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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산동고분군의 순장

Burial of the Living with the Dead in the Goryeong Jisandong Tumu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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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가야의 순장자는 순장묘의 주곽과 부곽, 순장곽에 매장되었다. 순장곽 순장자에 대한 의문이 있었으나 이 순장곽을 일반 대가야 석곽과 비교할 때, 작은 크기이면서금제수하부이식 등의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고, 목곽이나 목관이 사용되지 않은 직장이라는 특징이 있어 순장자로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순장곽의 매장자가 어린이와 노인보다 청장년의 비율이 높음은 그들이 강제적 죽음으로 인했을 가능성을 높여주어 순장자로 볼 수 있게 한다. 다만 몇몇의 순장곽으로 인식되던 것은 별도의 장례가 시행되었다든지 봉분과 함께 축조된 것으로 순장이라기보다는 배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지산동 순장묘를 검토하면 73호분과 75호분에 10인 내외,44호분에 36인 이상, 45호분에 15인 이상, 30호분에 5인 이상, 74호분에 4인 이상, 32호분과 34호분에 각각 2인, 33호분과 35호분에 각각 1인의 순장자가 매장되었다. 따라서 순장자 수는 대략 5인 미만은 개별의 수이나 그 이상은 5의 배수와 10의배수가 된다. 지산동의 순장은 5세기 초부터 6세기 초까지의 고분에서 관찰되나 더 이른 시기에출발하여 대가야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순장자의 수도 증가하고, 순장묘주의 범위도 확대되는 특징이 있다. 이는 대가야가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지산동 순장묘의 특성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수를 순장한다는 것과 순장곽을 별도로 축조하면서 순장자를 매장한다는 점, 무덤에서 순장묘주가 중앙의 가장 아래에 배치되어 순장자가 그를 둘러서서 호위한다는 점에 있다. 순장묘주는 남녀의 구분이 없이대가야의 왕과 왕족, 그리고 최고 귀족에 해당하나 남성의 무덤에 더 많은 순장이 시행되었다. 순장자는 순장묘주의 근신자로 호위무사, 의례관련자, 재산관리자, 시종, 비첩 등 주인 생활의 각 방면에서 봉사하던 인물로 상당한 지위를 가진 자들이다. 특히왕의 순장에는 지방의 지배자급에 해당하는 지위를 가진 자도 있었다. 가족이 대상이된 경우도 상정되고 산채 매장된 것이 아니라 살해된 후에 매장되었다. 대가야의 순장묘는 그들의 사후생활에 대한 관념인 계세사상에 충실하게 고분이 축조되었음을 적극적으로 지적한다. 이는 고분의 입지, 거기서 출토되는 유물의 풍부함등에서도 확인된다. 순장자가 청장년으로 한참 노동으로 주인에게 봉사할 수 있는 연령대라는 점은 사후에도 생전에 봉사하던 인물을 데려가 봉사를 받아야한다는 순장의 근본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무력적 성격의 지배층 특성에 따른 그들의 사후관을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대가야 순장이다.

Abstract

The burial of the living with the dead of Daegaya were buried in the main stoneouter coffin, the subordinate outer coffin, and Sacrificial burial. Sacrificial burial andhuman sacrifices raised a question, but through the comparison between this sacrificialburial and the ordinary Daegaya stone outer coffin, it is small and splendor artifacts wereexcavated from it, burial style is not wooden outer coffin or wooden coffin. So this tombcan be recognized by Sacrificial burial. Human sacrifice rates are higher young adults andmiddle-aged people than child and old age men. It is mean that young adults and middleagedpeople were killed by force, they can see human sacrifices. Just, several Sacrificialburial can see subordinate tomb, separate funeral ceremony and was built with the mound. Jisandong Tumulus as this standard, No. 73 and 75 had ten human sacrifices,No. 44 had over 36 human sacrifices, No. 45 had over 15 human sacrifices, No. 30 had 5human sacrifices, No. 74 had over 4 human sacrifices, No. 32 and No. 34 had each 2 humansacrifices, No. 33 and 35 had each 1 human sacrifice. The number of human sacrifice canmultiple of five and ten in case of over five, but in case of below five, human sacrifice caneach of number. Sacrificial burial of Jisandong have observed tomb between the beginning of theFifth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the Sixth Century, A.D. But it will make an early startand will be sustainable until the wrack of Daegaya. Over time, the number of humansacrifices have increased and is characterized by the scope of Sacrificial burial’s extension. It have relevance to Daegaya’s a progress of development at nation. Jisandong Tumulus have distinct features that is the most number of humansacrifices among the Korean Peninsula, buried human sacrifices at a separate outer coffin,the major person of sacrificial burial, he is placed in edge of center, were escorted burialhuman sacrifices. the major person of sacrificial burial is king and queen, noble of Daegaya. Human sacrifices is guard warrior, shaman, attendant etc. they have a good social position. Particularly, sacrificial burial of the king is such the man as powerful man of region. Everybody is not buried alive, but is buried after get the chop. Sacrificial burial of Daegaya was reflective of Daegaya’s afterlife, is verified positionof tomb and a great store of excavated relics, etc. Sacrificial burial of Daegaya showssacrifices burial’s fundamental purpose well, the human sacrifices serves to master in deathas in life. Especially, force nature of establishment appeared on the Sacrificial burial ofDaeg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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