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安峰寺의 寺刹雜役考-李文楗의 『默齋日記』를 중심으로-
Work done at a temple in Anbongsa Temple in the 16th century-- Based on Lee Mun-gun's Muk-jae Diary-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논문은 李文楗의 『黙齋日記』를 자료로 하여 16세기 貢納制 체제하에 사찰에서 이루어진 각종 잡역의 실태를 살펴본 것이다. 안봉사는 16세기 경상도 성주목 서북방 20리에 위치한 사찰로 성주 이씨의 원찰이다. 안봉사의 경제규모는 30마지기의 사유지, 논 2마지기와 밭 3뙈기 정도였는데, 1557년에 위전 1결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안봉사에는 20여 명 정도의 승이 적을 두었으며, 이 중에 10명 이상의 인원이 상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봉사는 사찰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종이를 생산할 정도의 비중 있는 사찰 중의 하나였다. 안봉사의 승역은 일정부분 지방군현의 수취체제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16세기 안봉사는 8결호로 편제되어 공물과 요역을 담당하였으며, 사찰에서는 군현에서 부과하는 각종 역을 부담하고 있었다. 사찰의 잡역은 관아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해 내는 과정이었다. 안봉사는 관아에서 지급하는 재료를 받아서 정해진 규모의 물품을 제작하여 납품하고 있었다. 이로서 그동안 사찰에서 원료의 생산에서 물품의 제작까지 모든 것을 담당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추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봉사의 승은 이문건을 통하여 役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했는데, 이는 그들이 부담하는 역이 지나치게 과중했기 때문이다. 16세기 지방관아 사찰 잡역은 維那라는 관리체계로 운영되었다. 유나승은 宗團의 維那所에서 선정하는데, 이 직은 사찰마다 돌아가며 맡게 되어 있었다. 유나승은 종이제작·메주생산·두부생산·삼베 익히기·도토리 줍기 등 사찰의 각종 잡역을 총괄하였다. 유나승의 일은 군현의 수취체제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공물과 잡물의 수취를 담당하는 鄕吏의 지시를 받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권은 鄕所가 가지고 있었다. 향소의 별감은 이들의 근무태도를 문제 삼아 교체를 결정할 수도 있었다. 종단에서는 승을 유나로 삼아 일의 효율을 꾀하고자 했지만, 이들의 신분이나 처지가 너무 낮아 양반에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승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기술력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지방관아의 수요에 응하였다. 이들이 생산한 종이·삼베·메주·두부 등은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일기를 통해서는 이것이 상품유통과 연계되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Abstract
Anbongsa Temple is a temple located in 20ri northwest of Seongju, and is characterized as a guardian of the Yi Clan. Anbongsa Temple is a small temple with 30 temples, two rice paddies, three fields, and one royal temple. Usually, about 10 to 20 monks lived in the temple, but later the number increased to about 40. Even though the size of the temple is not very large, the fact that it is included in the two major temples that produce paper shows that Anbongsa takes up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area. The victory of Anbongsa Temple is in line with the receiving system of local military prefectures under the 16th century system of public payment. In the 16th century, the victory of Anbongsa Temple was not only a member of the Eighth Route Army, but also a group of temples imposed by the county magistrate. The miscellaneous work of the temple was a process of meeting the needs of local authorities based on technical skills and labor. They were supposed to produce goods of a fixed size and deliver them to local authorities. In particular, the role of the temple was to provide labor and technical skills in that it produced goods using raw materials. The reason why they are seeking refuge in any way possible is that their roles were too heavy. In the 16th century, the Buddhist temple was operated under a special management system called Yunamonk[維那僧]. Yunamonk was chosen by Yunameeting[維那所] of religious group[宗團[, and was assigned to each temple. Yunamonk was in charge of various miscellaneous affairs of the temple, including papermaking, horseback riding, meju production, and tofu production. Yunamonk work is related to the receiving system of the county, so it was instructed by the government, but the authority to supervise them was in area Autonomous Organization. In that sense, the distinctiveness of the locality could have determined their replacement. The organization was able to promote the efficiency of the work by appointing a bright winner as Yuna, but their status was often too low and their authority was small, so they were often swayed by pressure from the aristocrats.
참고문헌 (25)
- 김인규, "(역주) 묵재일기" (2018), 민속원
- 정긍식, "국역 묵재일기, 원문표점 묵재일기, 묵재일기 인물사전 1∼6" (2019), 경인문화사
- 김덕진, "조선시대 地方官營紙所의 운영과 그 변천", 역사학연구, 12 (1993)
- 김삼기, "조선시기 제지기술의 도입과 紙料 가공 기술", 생활문물연구, 4 (2002)
- 김삼기, "조선후기 제지수공업 연구", 박사, 한국사, pp.2003
- 김영미, "18세기 전반 향촌 양반의 삶과 신앙 -李濬의 <導哉日記>를 중심으로", 사학연구, (82), pp.81~119 (2006), 한국사학회
- 김인규, "朝鮮 明宗代 星州地域 寺刹의 製紙活動", 傳統文化論叢, 1 (2003),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 김순남, "16세기 조선의 피역승의 증가와 승도 조직의 재건", 조선시대사학보, (66), pp.53~88 (2013), 조선시대사학회
- 민순의, "조선전기 度牒制度 연구", 박사, 종교학과, pp.2016
- 박정미, "16세기 星州 李氏 影堂寺刹 安峯寺의 규모와 운영 - 『묵재일기』를 중심으로 -", 태동고전연구, 31, pp.57~84 (2013), 태동고전연구소
- 박정미, "조선 명종대 星州 安峯寺의 儒佛儀禮", 태동고전연구, 32, pp.137~172 (2014), 태동고전연구소
- 박정미, "조선시대 佛敎式 喪·祭禮의 설행양상 - 왕실의 국행불교상례와 사족의 봉제사사암을 중심으로 -", 박사, pp.2015
- 배명애, "조선전기의 승려통제책과 僧役", 부대사학, 30, pp.553~592 (2006), 효원사학회
- 손계영, "17세기 사대부가의 종이 사용과 공급- 조극선의 일기를 중심으로 -", 藏書閣, (38), pp.56~89 (2017), 한국학중앙연구원[DOI]
- 손성필, "조선시대 불교정책의 실제: 승정체제, 사찰, 승도에 대한 정책의 성격과 변천", 한국문화, (83), pp.171~196 (2018),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양혜원, "조선 초 도승제(度僧制) 강화의 역사적 의의", 역사비평, (123), pp.287~310 (2018), 역사문제연구소[DOI]
- 吳京厚, "朝鮮後期 僧役의 類型과 弊端", 國史館論叢, 107 (2005)
- 오경후, "光海君·仁祖 年間 僧役의 實際", 한국불교사연구, (6), pp.43~71 (2015),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 윤용출, "조선후기의 요역제와 고용노동" (1998), 서울대학교출판부
- 윤용출, "17세기 후반 산릉역의 승군 부역노동", 지역과 역사, (28), pp.203~238 (2011), 부경역사연구소
- 이성임, "16세기 지방 군현의 공물분정(貢物分定)과 수취 - 경상도 성주(星州)를 대상으로 -", 역사와 현실, (72), pp.33~68 (2009), 한국역사연구회
- 이성임, "16~17세기 ‘공역호’(貢役戶)와 호수(戶首)", 역사연구, (24), pp.105~122 (2013), 역사학연구소
- 이성임, "16세기 지방군현의 立役體制와 승려의 賦役 ― 경상도 성주의 安峰寺를 중심으로 ―", 한국불교사연구, (8), pp.176~209 (2015),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 李光麟, "李朝後半期의 寺刹製紙業", 歷史學報, 17·18 (1962)
- 鄭珖鎬, "李朝後期 寺院雜役考", 史學論志, 2 (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