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계 문물 수용의 전환기로 본 가야와 왜의 교류양상
Aspects of exchange between Gaya and Wa seen as a turning point in acceptance of Wa-style culture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6세기를 기점으로 가야와 왜의 교류양상이 물적 교류에서 고차원적 인적 교류로 변화되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3~5세기 가야와 왜의 교류는 토기, 청동기, 철기 등의 물질자료를 매개로 이루어졌고, 일본열도 각지에서 제작된 물품들이 규슈지역을 경유하여 가야지역으로 전해진다. 우선 3~4세기 가야와 왜의 교류를 주도한 세력은 김해 대성동고분군을 축조한 금관가야의 지배층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철 소재를 포함한 한반도 각지에서 집적된 자원과 중국계 문물의 중계까지 활용한 대외교류를 기반으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남정을 계기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면서 5세기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가야와 왜는 교류 대상과 지역의 다원화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김해지역을 벗어나 남해안 일대 및 경남 서부 내륙지역으로 왜계 문물이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5세기 이후부터 가야와 왜를 연결하는 크고 작은 항구가 운영되면서 교류와 관련된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고, 나아가 대왜 교역과 관련된 지역 단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6세기 가야와 왜의 교류는 물적 교류를 넘어 고차원적 형태의 인적 교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왜계 고분을 통해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가야지역에서는 왜계 고분의 축조와 관련된 각 요소만 출현한 것이 아니라 왜인의 상장의례와 관계된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다. 당시 가야와 왜의 인적 교류의 핵심은 정치·외교의 목적보다 선진기술 및 정보의 습득과 관련이 깊다. 일본열도에서는 금공, 마사와 같이 선진기술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었고, 가야지역과 인접한 규슈지역에서는 다양한 출신의 왜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규슈 북부지역과 중서부지역 출신의 왜인들이 중심이 되어 가야와 교류를 주도하였음이 왜계 고분문화에서 확인되며, 고대 사회의 상징적 기념물인 고분을 통해 교류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상호 경쟁적 관계의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아울러 이때 규슈 중서부지역 출신의 왜인들 중 일부는 가야지역에 정착하는 삶을 선택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Abstract
This article paid attention to the phenomenon in which the exchange patterns between Gaya and Wa changed from material exchange to human exchange starting in the 6th century. Exchanges between Gaya and Wa in the 3rd to 5th centuries were carried out through earthenware, bronze, and ironware, and items produced in various parts of the Japanese archipelago were handed down to the Gaya region via the Kyushu region. First of all, the power that led the exchange between Gaya and Wa in the 3rd and 4th centuries can be said to be the ruling class of Geumgwan Gaya, who built the ancient tombs in Daeseong-dong, Gimhae. They continued to grow and develop based on trade, which utilized the resources accumulated in various parts of the Korean Peninsula, including iron, and the relay of Chinese culture. However, it began to decline from the 5th century as it suffered a serious blow from the invasion of the Goguryeo army. From this point on, as Gaya and Wa diversified their exchange targets and regions, the Wa culture gradually expanded beyond the Gimhae region to the southern coast and western inland regions. Since the 5th century, as large and small ports connecting Gaya and Wa have been operated, the range of choices related to exchanges has widened, and furthermore, there is a possibility that a regional network related to trade with Wa was formed. Exchanges between Gaya and Wa in the 6th century centered on highly human exchanges beyond material exchanges, and traces of them can be found through ancient tombs in Wa-style. In the Gaya region, not only each element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cient tombs of the Wa appeared, but also included parts related to the funeral rites of the Wa. At the time, the core of human exchange between Gaya and Wa was more related to the acquisition of advanced technology and information than political and diplomatic purposes. In the Japanese archipelago efforts were made to meet the demands for advanced technologies such as goldsmiths and horse breeding, and Wa people from various backgrounds gathered in the Kyushu region adjacent to the Gaya region. At this time, it is confirmed in the Wa-style tomb culture that the Wa people from the northern Kyushu region and the mid-western region led exchanges with Gaya as the center. And Through the tombs, which are symbolic monuments, the possibility of a mutually competitive relationship to gain the upper hand in exchange was also suggested. In addition, it was found that at this time, some of the Wa people from the central and western regions of Kyushu chose to settle down in the Gaya region.
참고문헌 (35)
- "三國志", ~
- 朴天秀, "가야문명사" (2018), 진인진
- 박천수, "고대한일교류사" (2023), 경북대학교출판부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巨濟 長木 古墳", ~ (2006)
- 동아시아 교역의 가교 대성동 고분군, "대성동고분박물관", ~ (2013)
- 김권일, "일본 고대 키비(吉備)지역 초기 철 제련유적 검토", 유라시아문명사연구회 제24회 정기발표회 (2023), 유라시아문명사연구회
- 김규운, "한반도 전방후원분과 왜계석실의 분포유형 검토", 한국상고사학보, 70(70), pp.69~98 (2010), 한국상고사학회
- 김일규, "남해안지역 須惠器(系)土器의 출현배경과 의의, 삼국시대 남해안지역의 문화상과 교류", 제3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2011), 한국고고학회
- 김준식, "倭系石室로 본 加耶와 倭의 交流", 대구사학, 136, pp.73~106 (2019), 대구사학회[DOI]
- 김준식, "가야 속의 왜계문물의 현상과 과제, 동아시아의 열린 공간, 가야",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2023)
- 김혁중, "한반도 출토 왜계갑주(倭係 甲冑)의분포와 의미", 중앙고고연구, (8), pp.39~85 (2011), 중앙문화유산연구원
- 김혁중, "4~6세기 찰갑을 통해 본 한일 교류", 한국고고학보, 2021(1), pp.39~64 (2021), 한국고고학회
- 김혁중, "고대 갑주의 의례적 성격 — 고분 출토품을 중심으로", 한국고고학보, 2022(2), pp.371~388 (2022), 한국고고학회
- 박지혜, "4∼6世紀 嶺南地方 出土 鐵鋌의 變遷과 地域性", 석사, 고고인류학과, pp.2013
- 유영춘, "삼국시대 사행검(蛇行劍) 일고찰(一考察)", 한국고고학보, 2022(2), pp.389~424 (2022), 한국고고학회
- 이영식, "가야문화의 국제적 성격 -김해 대성동구분군과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중심으로-",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함안 말이산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심포지엄 (2013),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이영식, "가야고고학개론" (2016), 진인진
- 李知熙, "한반도 출토 須惠器의 시공적 분포연구", 석사, pp.2016
- 鄭仙雲, "加耶 港市의 成立과 展開", 석사, pp.2022
- 鄭澄元, "筒形銅器", 福岡大學綜合硏究所報, 240 (2000), 福岡大學
- 조성원, "영남지역 출토 4~5세기대 土師器系土器의 재검토", 한국고고학보, (99), pp.138~169 (2016), 한국고고학회
- 洪潽植, "福岡大学考古学論集 -小田富士雄先生退職記念-" (2004), 小田富士雄先生退職記念事業會
- 홍보식, "한반도 남부지역의 왜계 요소-기원후 3∼6세기대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44), pp.21~58 (2006), 한국고대사학회
- 홍보식, "한반도의 전방후 원분" (2011), 학연문화사
- 龜田修一, "日本の対外関係 -東アジア世界の成立" (2010), 吉川弘文館
- 久住猛, "하카다만 무역의 성립과 해체 재론 -토기에서 본 왜와 한반도 교역망의 변천-, 금관가야의 국제교류와 외래계 유물", 제20회 가야국제학술회의 (2014),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 宮元香織, "橫穴式石室からみた九州の後期首長墳について, 後期古墳の再檢討", 第11回九州前方後圓墳硏究會 佐賀大會 (2008), 九州前方後圓墳硏究會
- 高田貫太, "가야고분군Ⅳ" (2018), 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 木下 亘, "韓半島 出土 須惠器(系) 土器에 대하여", 백제연구, 37, pp.21~36 (2003), 백제연구소
- 武末純一, "加耶史論集1 -加耶와 古代日本-" (1998)
- 스즈키 코키, "가야권역에서 출토된스에키계토기의 역사적인 배경",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55(2), pp.66~79 (2022), 국립문화유산연구원[DOI]
- 柳澤一男, "5∼6世紀韓半島と九州-九州系埋葬施設を中心として, 加耶, 洛東江에서 榮山江으로", 제12회 가야사국제학술회의 (2006)
- 浜中邦弘, "宇治市街遺蹟(宇治妙楽55)古墳時代流路SD302について -出土須惠器と年代觀の檢討を主として-", 第14回京都府埋藏文化財硏究會發表資料集 –京都府內最新の硏究成果- (2006), 京都府埋藏文化財硏究會
- 若狹徹, "古墳時代毛野" (2011), 雄山閣
- 井上主稅, "朝鮮半島南部の土師器系土器について", 韓式系土器硏究, 10 (2008), 韓式系土器硏究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