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진주읍회·진주부회의 구성과 성격
Composition and Characteristics of Jinju Eup-council and Jinju Pu-council in the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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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진주 내 지역엘리트로 구성되었던 읍회·부회의 활동 양상을 살펴보고, 지역개발 논의 과정에 주축으로 참여했던 의원들의 구성과 활동을 통해 진주읍·부회의 특성과 변화상을 검토하는 것이다. 읍회와 부회의 활동은 조선총독부의 지배체제 아래에서 제한적·형식적으로 전개되는 측면이 많았지만, 진주에서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협력체계가 비교적 오랫동안 전개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기간에 읍·부회는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면서 기구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주는 일제강점기가 된 이후 전통 도시로의 위치를 위협받았고, 이러한 위협은 부로의 지정 실패와 1924년 진주 내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으로 가시화된다. 이에 진주에 오랜 기간 거주해 온 조선인뿐만 아니라 진주 내 기반을 중점으로 활동하던 일본인들은 적극적으로 협력해 도청 이전을 반대하였다. 이 같은 사건은 지역 내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협력관계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성된 읍회에서는 지역의 발전이 당면 과제로 부상하면서 지역엘리트로 구성된 조일 의원들은 지역 현안의 해결을 위해 일정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둘째, 진주는 1939년 도시의 성장을 통해 부로서의 승격이 이루어졌고, 이후 선거에 나선 지역엘리트들은 지역개발에 자신이 이바지하고자 하는 바를 공약으로 발표하는 선거운동에 나섰으며, 당선된 이들은 해당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부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하지만 전시체제기라는 특수한 상황의 강화로 인해 지역 내 개발을 모색할 방법이 점차 사라졌고, 총독부에 의해 비교적 ‘자치’ 기관에 가까웠던 부회의 선거 방식이 추천제로 변경되면서 조일 의원 간의 협력과 이들로부터 비롯된 지역개발 시도는 좌절되었다. 선출된 의원들은 일제의 전쟁 수행에 동조하고 이를 선전하는 기구로 부회를 변질시켰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activities of the Eup-Council and Pu-Council, which were composed of local elites in Jinju, and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and changes in these councils by examining the composition and activities of lawmakers who primarily participated in regional development discussions. Although the activities of the Eup-Council and Pu-Council were often limited and formal under the ruling system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he cooperative system between Koreans and Japanese in Jinju developed over a relatively long period. During this time, the Eup-Council and Pu-Council addressed regional issues and curtailed the formal operation of these organizations. The summary is as follows: First, Jinju’s status as a traditional city was threaten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this threat became more pronounced after it failed to be designated as a Pu and after the relocation of the Gyeongnam Provincial Office from Jinju to Busan in 1924. As a result, not only Koreans who had lived in Jinju for a long time, but also Japanese who were primarily active in the city, cooperated actively to oppose the relocation of the provincial government office. This incident served as a catalyst for establishing a cooperative relationship between Koreans and Japanese in the region. In the Eup-Council formed afterward, as regional development became an urgent task, Korean and Japanese lawmakers, composed of local elites, established a cooperative relationship to address regional issues. Second, Jinju was promoted to Pu status in 1939 due to its growth, and local elites who were elected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Pu-Council to fulfill their pledges. However, due to the reinforcement of the wartime system, efforts to pursue regional development gradually disappeared. Additionally, the election system of the Pu-Council, which had been relatively close to an ‘autonomous’ institution under the Government-General, was changed to a recommendation system, thwarting cooperation between Korean and Japanese lawmakers and stalling regional development efforts. The elected lawmakers transformed the Pu-Council into an organization that supported and promoted the Japanese war ef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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