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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鄭汝昌 가문의 宗統 논쟁과 인적네트워크

Lineage system controversy and human networks of the Jeong-yeochang(鄭汝昌) family in the Mid-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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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하동정씨 문헌공파는 정여창에 의해 함양이라는 지역을 넘어서는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성종대 진행되었던 사림정치의 활발한 전개 과정 속에서 정여창의 仕宦은 학문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양의 명문 사대부 가문들과 혼맥을 통한 광범위한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토대로 정여창 형제와 후손들은 함양의 대표적인 재지사족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했고, 정여창을 安葬한 함양 개평은 학맥과 혼맥을 통해 지역 내에서의 인맥 구축과 함께 중앙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적네트워크의 확장성을 확보했다. 정여창 가문의 위상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宗統 논쟁은 조선 중기 성리학적 종법 질서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여창의 奉祀를 중심으로 한 종통 논쟁은 조선 전기의 『경국대전』 체제가 지닌 양면성이 가계 계승을 강조한 『주자가례』의 원칙에 의해 입후가 정착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가는 모습을 반영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여창 가문의 종통 논쟁에는 붕당체제의 정치 역학적 힘이 개입되기도 했다. 인조반정을 전후하여 정여창 가문은 서인과의 인적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주요 정치 현안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종통 논쟁의 전면에서 활동했던 鄭弘緖를 중심으로 한 정여창 후손들은 조식을 중심으로 한 북인세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반면 이이와 성혼을 중심으로 결집하던 서인 가문들과 혼인을 통한 교유관계를 구축했다. 정홍서의 아들 鄭光淵 역시 이이와 성혼의 문묘 종사에 참여하는 등 경상우도의 반서인적 정서와 상반되는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바탕에 부친대부터 지속되었던 서인 가문들과의 중첩된 혼인과 그를 바탕으로 한 인적네트워크가 있었다.

Abstract

The Hadong-Jeong Family Munhungong-pa(文獻公派) formed a human network beyond the Hamyang area by Jeong Yeo-chang(鄭汝昌). In the course of the active development of Sarim(士林) politics during Seongjong's era, Jeong Yeo-chang's advance to office, based on academic consensus, built an extensive human network through the kinship with Hanyang(漢陽)'s prestigious noble families. Based on this, the Jeong Yeo-chang brothers and their descendants established their status as representative family members of Hamyang(咸陽), and Hamyang Gaepyeong, where secured Jeong Yeo-chang, expands the human network that enables communication with the central government and builds personal connections within the region through academic and spiritual connections. Lineage system controversy which appeared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status of the Jeong Yeo-chang family, is noteworthy in that it shows the spread of understanding of the Neo-Confucian religious order in the mid-Joseon Dynasty.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sectarian debate centered on performing Jeong Yeo-chang's ancestral rites is that the duality of the 『Gyeongguk Daejeon(經國大典)』 syste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reflects the transition to a way to settle down by the principle of 『Juja Garye(朱子家禮)』, which emphasizes the inheritance of the family line. Before and after the Injo Rebellion(仁祖反正), the Jeong Yeo-chang family strengthened the human network with Seo-in(西人) and intervened directly in major political issues. Jeong Hong-seo(鄭弘緖) the descendants of Jeong Yeo-chang, who were active at the forefront of the lineage system controversy, maintained a certain distance from Bug-in(北人) centered on Jo Sik(曺植), while establishing friendships through marriage with Seo-in who had centered around Lee Yi(李珥) and Seong Hon(成渾). Jeong Hong-seo's son, Jeong Gwang-yeon(鄭光淵), also engaged in Munmyojongsa(文廟從祀) Lee Yi and Seong Hon, and engaged in activities contrary to the Anti-Seo-in(反西人) sentiment of Gyeongsang-U-do. In the background, there were overlapping marriages with Seo-in families that had been in existence since the time of his father, and a human network based on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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