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남인 윤선도의 관계망
Honam namin Yun Seon-do’s Networks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17세기 대표적인 호남남인(남인계 호남사림)이었던 윤선도의 관계망을 살펴본 것이다. 윤선도의 관계망은 다양하지만 크게 혈연적, 지역적, 학문적, 관료적 관계망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윤선도집안은 고조인 윤효정 대 해남에 사회경제적기반을 마련하고 호남의 대표적인 사족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해남윤씨는 윤선도 대에 와서 문중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1702년 족보가 편찬되기도 하였다. 윤선도의 혈연적 관계망은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조선사회의 과도기적 모습을 친족관계의 측면에서 잘 보여준다. 윤선도집안은 호남의 서남해안지역에 강력한 재지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서울 중앙과의 지역관계망을 구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윤선도와 그의 가문의 지역적 관계망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걸친 지방 재지사족들의 생존 전략과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준다. 윤선도의 학문⋅사상적 맥은 북인 또는 북인계 남인과 연결된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관계망은 이들 뿐만 아니라 이황학파와 당색이 옅은 서인계 인물까지 연결되었는데 이는 호남남인의 학문적 특징이기도 하다. 윤선도는 집안과 문중의 재산을 유지⋅ 경영하고 지방 재지사족으로서의 기반을 다져나가는데 지방관들과의 관계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중앙과 지방에 걸친 윤선도의 관료적 관계망은 조선 중기 향촌에 기반 한 재지사족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지배적 위치를 유지·발전시켜 나가려고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선시대 혈연적, 지역적, 학문적, 관료적 관계망 등 이 4개의 관계망은 서로 중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다양한 관계망들은 윤선도의 삶에 많은 영향을미쳤다. 윤선도는 학문적 관계망을 통해 호남남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혈연적관계망을 통해 해남윤씨집안의 결집을 도모하였고 지역적 관계망을 통해 서울 중앙과의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관료적 관계망을 통해 집안의 재산을 유지하고 지방 재지사족으로서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또한 윤선도와 그 집안의 관계망을 통해 우리는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조선사회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향촌에 기반 한 지방의 재지사족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지배적 위치를 유지⋅발전시켜 나가려고 했는지, 그 생존전략과 변천과정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looks into the Yun Seon-do’s networks who is the typical Honam namin in 17th century. Yun Seon-do’s networks are various and we can study his networks in terms of kinship, regional, academic and bureaucratic networks. Yun Seon-do’s family established a socio-economic foundation by succeeding the great property from the wife’s father, Jeong Gui-young who was a landed proprietor in Haenam region. Hereafter from his three sons as Yun Gu and Yun Haeng, Yun Bok until Yun I-hoo who was Yun Seon-do’s grand so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Yun’s family became a typical noble family in Honam province. Based on this Haenam Yun’s family made an effort to form a clan and compiled the genealogy in 1702. The kinship network of Yun Seon-do showed the transitional figures of Joseon society from mid Joseon to late Joseon period. Yun’s family builded a strong regional base and prepared the houses i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Futhermore Yun’s family made a regional network and tried to maintain by marrying noble families of Seoul area. But Yun’s family was expelled from Yangban domination network in late 18th century becausing of cutting the regional network with Seoul. The regional network of Yun’s family showed a surviving strategy and a process of change of local noble family from mid Joseon to late Joseon period. Yun Seon-do studied without a teather but his learning and thoughts was rooted in Gimyo sarim. He rated Jeong Gae-cheong high. So his academic line was related with Bukin or Namin affiliated with Bukin. This fact was identified by that most persons to whom Yun Seon-do was related politically and academically were Geungi namin or Honam namin who were rooted in Bukin. But his academic network was related with Yi Hwang school and Seoin of few partisan coloring. This is the academic characteristic of Honam namin. Yun Seon-do had a few persons to associate with during his incumbency because he had filled a government post for ten years. But keeping company with local governors was more than central bureaucrats. Yun seon-do used bureaucratic network positively to manage his family’s great fortune. Yun’s bureaucratic network from central to local area showed how local noble families maintained their dominant power. Four networks as kinship network and regional network, academic network, bureaucratic network had multi-level characteristics. And these various networks had much effect on Yun Seon-do. Yun established his identity as Honam sarim affiliated with Namin (Honam namin) through the academic network. He made an effort to unite Yun’s family and maintained the relation between Seoul and local area through the regional network. And he maintained his family’s property and established the foundation as local noble family through the bureaucratic network. We look into transitional figures of Joseon society in many ways through networks of Yun Seon-do and Yun’s family. And we also look into the surviving strategy and a process of change how local noble families maintain and develop their dominant power.
참고문헌 (38)
- "孤山遺稿", ~
- "孤山先生年譜", ~
- "光海君日記", ~
- "甫吉島識", ~
- "宣祖修正實錄", ~
- "肅宗實錄", ~
- "海南尹氏文獻", ~
- "海南尹氏族譜 (壬午譜, 1702)", 顯宗實錄, ~
- 한국학중앙연구원, "古文書集成 3 海南尹氏篇" (1986), 한국학중앙연구원
- 강대민, "남명학파와 영남우도의 사림" (2004), 예문서원
- 고영진, "호남사림의 학맥과 사상" (2007), 혜안
- 고영진, "이황학맥의 호남 전파와 유학사적 의의", 영남학, (32), pp.71~96 (2003), 퇴계연구소
- 고영진, "사회적 네트워크와 공간" (2009), 태학사
- 고영진,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윤선도의 삶", 역사학연구, (68), pp.61~95 (2017), 호남사학회
- 고영진, "윤선도의 학문과 사상적 특징", 규장각, (51), pp.237~296 (2017),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金東洙, "16-17世紀 湖南士林의 存在形態에 대한 一考察―특히 鄭介淸의 門人集團과 紫山書院의 置廢事件을 중심으로 하여―", 歷史學硏究, Ⅶ, pp.43~104 (1977), 전남대 사학회
- 김병헌, "孝宗大王 寧陵의 擇山 논쟁", 조선시대사학보, (69), pp.137~166 (2014), 조선시대사학회
- 김창원, "李賢輔에서 尹善道로―族譜의 家系圖를 따라서―", 고전과 해석, 2, pp.58~92 (2007),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 문숙자, "17세기 해남윤씨가(海南尹氏家)의 묘위토(墓位土) 설치와 묘제(墓祭) 설행 양상 -친족결합 장치와 종가(宗家)의 역할에 대한 고찰-", 역사와 현실, (87), pp.425~456 (2013), 한국역사연구회
- 문숙자, "조선후기 兩班家系와 地域民의 관계 및 그 변화양상 - 해남윤씨 고문서를 중심으로 -", 古文書硏究, 48, pp.103~131 (2016), 한국고문서학회[DOI]
- 백광렬, "조선후기 ‘양반지배네트워크’의 성격과 구조변동―상층양반의 친족연결망을 중심으로", 박사, pp.2017
- 신병주, "17세기 政局의 전개와 趙絅의 정치적 활동", 조선시대사학보, (80), pp.175~204 (2017), 조선시대사학회
- 안상우, "海南尹氏 孤山 尹善道의 醫藥事跡", 『도서문화』, (46), pp.33~54 (2015), 도서문화연구원[DOI]
- 安承俊, "16-18世紀 海南尹氏家門의 土地⋅奴婢所有實態와 經營―海南 尹氏古文書를 중심으로―", 淸溪史學, 6, pp.157~222 (1989), 청계사학회
- 元容文, "孤山尹善道의 詩歌 硏究" (1996), 국학자료원
- 윤인숙, "조선전기의 사림과 <소학>" (2015), 역사비평사
- 이남희, "조선 사회의 유교화(儒敎化)와 여성의 위상 — 15·16세기 족보를 중심으로 —",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48), pp.135~168 (2011), 원불교사상연구원
- 이성임, "16세기 양반사회의 "膳物經濟"", 한국사연구, (130), pp.53~82 (2005), 한국사연구회
- 이종범, "海南尹氏家의 學問과 朋黨政治", 韓國服飾, (27), pp.7~32 (2009),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 이해준, "조선후기 ‘문중화’ 경향과 친족조직의 변질", 역사와 현실, (48), pp.169~190 (2003), 한국역사연구회
- 이해준, "朝鮮後期 門中書院 硏究" (2008), 경인문화사
- 전다혜, "17세기 관료학자 李景奭의 현실인식과 정치활동", 석사, 사학과, pp.2014
- 정윤섭, "해남윤씨가의 간척과 도서島嶼 경영" (2012), 민속원
- 정윤섭, "녹우당―해남윤씨 댁의 역사와 문화예술―" (2015), 열화당
- 정호훈, "朝鮮後期 政治思想 硏究―17세기 北人系 南人을 중심으로―" (2004), 혜안
- 崔在錫, "朝鮮時代의 門中의 形成", 韓國學報, 32, pp.2~44 (1983), 일지사
- 한상권, "17세기 중엽 해남 윤씨가의 노비소송", 古文書硏究, 39, pp.105~146 (2011), 한국고문서학회[DOI]
- 한효정, "소송을 통해 본 17세기 노비횡탈 양상 -해남윤씨가(海南尹氏家) ‘안심(安心)’자녀 소송 문서를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87), pp.367~394 (2013), 한국역사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