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출병사]를 통해 본 1920년 강안(江岸)수비대의 활동
The Actual Activity of the Riverside Garrison in 1920 through “A History of The ‘Kando’ Interv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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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기존에 조명되지 않았던 강안수비대라고 하는 주력 부대에 가려진 부대의 활동 실태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1920년 간도 일대를 초토화하려 했던 일본군의 의도 및 전략을 밝히고자 했다. 본고의 검토를 통해 밝힌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강안수비대의 임무는 1920년 간도일대의 독립군의 근거지 ‘초토’를 위해 주력부대(이소바야시, 기무라, 히가시) 및 헌병경찰과 협동하는 것이었고, 규모는 약 6개 중대급의 규모로 동원되었다. 둘째, 본문에서 제시한 <귀순자 조사표> <‘초토’ 효과 일람표>를 통해 귀순자 확보 비중 및 사살인원 비중에서 강안수비대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짐을 밝혔다. 이 지표를 통해 생포하기보다 사살 처분해 버리는 횡포가 자행되었던 무자비한 강안수비대의 횡포를 유추할 수 있다. 셋째, 주력군(주요 지대)의 철수 이후에도 간도파견대, 간도연락반 등으로 명칭과 편제를 변경해 가면서 강안수비대를 남겨두었던 것은 긴급 간도 재출병에 상시 준비할 수 있는 조직으로 활용하기 위한 일본군의 편법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presents the actual situation of the riverside garrison, which was overlooked in the previous research, and attempts to highlight the intentions and strategies of the Japanese army toward the ‘Kando’ area during 1920. The points argued through the review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First, the mission of the riverside garrison was to cooperate with the main forces (Isobayashi, Kimura, Higashi) and the military police for the base of the independence army in the ‘Kando’ area in 1920, and the scale was about 6 companies. Mobilized. Second, it was argued that the riverside garrison’s “active” was very remarkable in the proportion of securing defectors and the proportion of the number of killers through the <Table for defection survey> and <Table of suppression effects>. Through this indicator, it is possible to infer the ruthless tyranny of the riverside garrison, where the tyranny of killing rather than capturing was committed. Third, even after the withdrawal of the main force, the name and organization of the ‘Kando’ contingent, the ‘Kando’ contact Group, etc., were changed and the riverside garrison was left behind, which was a convenient method of the Japanese military to use it as an organization that could always prepare for emergency ‘Kando’ re-inv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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