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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태평양 팔라우 군도 한인의 강제동원과 귀환

Korean Activities and Repatriation from Palau Islands before and after the Pacific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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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지금도 우리에게 생소한 태평양상의 군도상에는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떠도는 영혼들이 남아있다. 특히 중부태평양지역에 강제동원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군인이던 군속이던 위안부던 간에 한결같이 같이 있었던 동료 대부분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군인출인이던 홍종태의 경우 자신과 같이 갔던 한인 17명 가운데 자신을 포함하여 2명만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그만큼 일제말기 팔라우 군도에 갔던 한인들은 대부분 사망하였다. 해방이후 신문자료에서 보면 1947년 1월 현재 중부태평양지역 이른바 ‘남양군도’에서 귀환한 사람들은 단지 25,773명이었고, 「戰災同胞援護會中央本部, 立法議院에 戰災同胞援護를 위한 건의안을 제출하다」 ꡔ동아일보ꡕ 1947년 1월 11일자. 팔라우에서만 약 3천 여명이 귀국한 것으로 나타난다. 수만명의 한인들이 태평양지역으로 끌려갔지만 대부분은 이곳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현재까지 팔라우 군도에 강제동원된 한인들의 규모가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한인 노무자나 위안부에 대해서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명부와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대략적인 규모가 파악된다. 그러나 군인·군속에 대해서는 그 규모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희생된 한인들의 숫자도 알 수 없다. 지금 팔라우에는 일본군에 의해 처형된 한인 40여구의 시체를 거두어 합장한 묘가 유일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제의 무모한 전쟁에 희생된 한인들의 영령들을 위한 비가 코롤쪽 바닷가에 서 있다. 해외희생동포위령사업회에서 건립한 ‘평화기원한국인위령비’가 코롤섬과 바벨다옵섬을 연결하는 K-B다리(한양건설의 시공으로 세워졌지만 1996년 9월에 붕괴) 밑에 세워져 있다.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중부태평양지역은 미군들의 관할하에 놓이게 되었다. 대부분의 섬에서는 군정이 실시되었으며 미군정하에 미군과의 교섭을 통해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직후 중부태평양지역에 있었던 대부분의 한인들은 곧바로 귀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인의 귀환은 점령군이 담당해야만 하는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인들은 자신들의 단체를 조직하여 현지 일본군과 미군정과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팔라우군도의 경우에 미군정과의 교섭을 통해 미군에 협력을 하다가 1946년이 되어서야 귀환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지역 한인들의 귀환과 정책을 담당했던 미국당국의 자료와 현지 조사를 통해 자료가 발굴된다면 보다 역사적 사실에 근접할 것으로 기대한다.

Abstract

Japanese assaulted Pearl Harbor on 7th of December, 1941. Pacific war started. Therefore Japanese were needed the expenses and peoples for war. And they started the coercive mobilization of Koreans by Japanese. Especially, they took so many Koreans, labors, comport women, and soldiers to the Pacific area. Koreans in Pacific area almost were died by air attacking and starving. And they could not repatriate to their mother land. I focused on the Koreans activities in the Palau Islands. The Palau Islands located in middle Pacific. Japanese troops encamped at the Koror Island, they took Korean women for comport system after 1936. And Japanese mobilized Korean labors to make air bases and road construction. Korean labors made so many roads and bridges in the Koror Island. Japanese coercively dealt with Korean labors, so it was one of the bridges, so called ‘Iigo Bridge’. ‘Iigo’ is the scream of Korean to be made the hard time. And Japanese recruited Korean soldiers to send the Palau Island after 1938. Korean soldiers engaged the battles of the Peleliu Island and Angaur Island. Korean soldiers had to fight against the US troops. After 15th of August 1945, Koreans in Palau Islands could set free from Japanese. About three thousand Koreans could repatriate to the mother land in 1946. But all of Koreans died of the attacking by US troops and starving in the Palau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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