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의 아나키스트 활동
Anarchist activities of Yi Hol-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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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회영은 세도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출세의 길을 버리고 새로운 사상 수용의 선구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한말에 사회진화론 등 근 대사상을 수용하고, 거기에 입각하여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 했다. 하지만 실력양성을 통한 근대화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독립을 우선시했다. 그는 자주적 근대화를 추구하면서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주권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온갖 노력에도 국망이 다가오자 만주기지 건설에 앞장섰으며, 일제에 의한 강점 이후에는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기지 를 개척했다. 3·1운동 이후 중국에서 민족해방운동가들과의 토론과정에서 아나키즘 을 접하였다. 한국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북경으로 거처 를 옮긴 뒤,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어갈 반제국주의적 사고체계로서 아나 키즘을 선구적으로 수용하였다. 이후 아나키즘에 입각하여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와는 다른 제3의 독자적인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그는 아나키즘을 실천하다가 일제의 마수에 걸려 고문사당하고 말았다.
Abstract
Yi Hol-Yong, a son of a man of power, didn’t seek his fortune and led a life of a forerunner accepting new ideas. He accepted modern thought like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at the end of the Korean Empire and inaugurated a campaign to cultivate real ability through education based on modern thought, however, he was not buried in modernization itself through the cultivation of real ability and subordinated modernization to Korea’s independence. Pursuing autonomous modernization, he tried to defend Korea’s sovereignty from Imperialists’ invasion. As the end of his fatherland was near, he led the establishment of a base in Manchuria. And he emigrated to Manchuria and exploited bases for an independence movement there after Japanese colonial rule of Korea. After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he came to know anarchism in the course of discussion with activists for the campaign for liberation of the oppressed people. After moving out to Peking objecting the establishment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he accepted anarchism as a thought system of anti-imperialism for leading the campaign for liberation of the oppressed people. Afterwards on the basis of anarchism he led the third independent campaign for liberation of the oppressed people different from communism and nationalism. But he died from torture by the evil hand of Japanese imperialism during his practicing anarc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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