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榮의 北京 생활:1919~1925
The Life of Yi Hoi-yong in Beijing, 1919~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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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19년 5월부터 1925년 11월까지 이회영(李會榮, 1867~1932)은 북경에서 거주하였다. 이회영의 북경 집은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연락처이면서 중간기착지이기도 하였다. 그가 북경에 정착한 것은 그 친족 일부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고, 교통의 중심이라는 북경의 지리적 조건이나 일제의 직접적인 탄압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는 부인 이은숙을 비롯하여 가족들과 함께 하였지만, 경제형편에 따라 부인이 국내에 머물기도 하였다. 초기 2·3년은 동지들의 지원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지만, 그 이후 4년은 궁핍한 생활이었다. 북경에서 6군데의 셋집을 전전하였는데, 숭문문(崇文門) 밖, 자금성(紫禁城) 북쪽 후고루원(後鼓樓園), 북경대학 근처 이안정(二眼井), 안정문(安定門) 안의 관음사(觀音寺), 교도구(交道口) 근처 소경창(小經廠), 모아호동(帽兒胡同) 등에 살았다. 두어 해부터 몇 달까지, 그 기간은 뒤로 갈수록 짧았으며 집도 좁아졌다. 대체로 북경의 동성지역이었다. 이회영이 북경에 정착한 이후, 초기에는 임시정부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함께 거주하거나 자주 방문하였다. 기호와 영남 출신들이 많았다. 박용만·김창숙·신채호 등과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던 이회영은 1923년경 이을규·이정규 형제 등 아나키스트들과 연결되면서 그 자신도 아나키즘에 공감하여, 1924년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였다. 김종진·심훈·한기악·소완규 등 청년들의 출입도 있었고, 친족들도 적지 않게 북경에 거주하였다. 대신 서북세력이나 흥사단계, 기독교도 등과 공산주의자들과의 교분은 크게 없었다. 유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보황파라는 소문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제외하고는 북경에서 조직된 여러 단체에 관여하지 않았다. 북경에 거주한 7년 동안 이회영에게 가장 중요하였던 일은, 그가 아나키즘을 수용하여 아나키스트가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그가 북경에서 어린 아들과 두 손녀를 잃는 등 간난한 생활이었지만, 그 나름의 독립운동 방략을 찾았고 동지들을 얻었던 것이다. 그의 아나키스트로의 활동과 역할은 북경보다 천진으로 옮겨간 뒤에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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