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의 관점으로 본 관동대학살
The Kanto Massacre in a Perspective of the Geno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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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의 목적은 1923년 관동대학살을 제노사이드의 관점으로 살펴보려는 데 있다. 이 사건에 관한 기존 연구에서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에게 가해진 학살을 제노사이드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관동대학살의 어떤 지점이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충분한 학술적 규정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사건 발생 100주년을 맞는 지금, 관동대학살을 제노사이드로 바라봄으로써 얻게 될 학술적, 사회적 과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글에서는 먼저 제노사이드의 정의와 성립 요건을 검토하였다. 라파엘 렘킨이 창안한 제노사이드의 초기 형태와 이후 제노사이드 협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전개된 논쟁을 살펴보고자 했다. 다음으로는 관동대학살의 사례가 제노사이드의 조건에 부합하는지를 실증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제노사이드의 성립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의도성, 절멸 행위, 피해자 집단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는 관동대학살을 제노사이드의 관점으로 해석함으로써, 추후 해명되어야 할 과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논하였다.
Abstract
The main objective is to study the Kanto Massacre in 1923 in a perspective of the genocide. The previous studies on this case approved the massacre towards Koreans in Kanto as a genocide. However, sufficient academic classification on specifically which point made it as a genocide was not made. Furthermore, since it is the centenary of the Massacre, it is necessary to propose academic and social tasks generated from taking consider the Kanto Massacre as a genocide. Based on this awareness, this study first examined the definition and requirements for the establishment of a genocide. The primary form of genocide devised by Raphael Lemkin and controversy engendered in a midway through establishing the Genocide Treaty were also studied. Moreover, qualification and verification of the Kanto Massacre as a genocide were determined. Especially, the intentions, extermination action, and victims groups which are significant in validation of genocide were prioritized in the study. Lastly, further studies were suggested by interpreting the Kanto Massacre as a genocide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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