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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살에 대해 해외 조선인이 생산한 문건과 그 성격

Characteristics of documents produced by Koreans on the Kanto Massac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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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의 목적은 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학살 이후 해외의 조선인들이 인식한 사건의 일단과 그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특히 조선인들이 생산한 문건에 주목하여 유형화하였다. 이들 문건은 각각 ‘항의’, ‘선전’, ‘기록’의 목적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일본정부의 책임과 조선인 학살의 비인도성, 피학살 조선인의 ‘무고함’을 밝혀내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각각의 문건은 작성 시점, 대상, 작성 주체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내용상 큰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관동대학살에 대한 해외 조선인들의 인식이 단일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조선인 학살’이라는 사건을 능동적으로 전유하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건에 대한 대응방법 역시 다르게 표출되었다. 이 문건들은 당대의 조선인들이 인식하고 있던 학살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조선인 학살의 구체적인 사실을 규명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이다. 특히 식민권력의 은폐시도에 맞서 조선인 학살의 ‘기억’을 남기고자 한 하나의 대응방식으로서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a group of events recognized by Koreans abroad after the Kanto Massacre in September 1923, and their reactions. In particular, it was categorized by paying attention to documents produced by the Koreans. These documents had the purpose of ‘protest’, ‘propaganda’, and ‘recording’, respectively. In common, the purpose was to uncover the responsibility of the Japanese government, the inhumanity of the massacre of Koreans, and the “innocence” of the murdered Koreans. However, each document showed a big difference in content depending on the time of writing, the object, and the political orientation of the subject. This shows that not only was the overseas Koreans’ perception of the Kanto massacre not unified, but they also actively tried to exclusiveize the case of the “Korean massacre.” Based on this perception, the method of responding to the event was also expressed differently. These documents can confirm the reality of the massacre recognized by the Koreans of the time, and are still the basic data necessary to clarify the specific facts of the massacre of Koreans. In particular, it has historical significance as a countermeasure to leave a ‘memory’ of the massacre of Koreans against the Japanese government’s attempt to conceal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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