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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保의 단종복위운동 연루와 伸寃‧追尊 연구

A Study on the Restoration Movement for King Danjong, the Vindication and Honoring after Death of the Conspir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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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鄭保는 세조 2년(1456) 6월에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났을 때, 死六臣의 무죄를 주장했다가 亂言罪로 연루되어 車裂刑에 처해졌으나 형 집행 직전에 정몽주의 손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감형되어 영일로 유배되었다가 후에 丹城의 文泰村에 移配되었다.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된 자들에 대한 신원 조처는 숙종 17년(1691)에 국왕의 주도로 전격 단행되었다. 숙종은 사육신의 신원을 직접 주도하면서 세조의 비망기를 내세웠는데, 그 내용은 세조가 이들을 “당대에는 난신이나 후세에는 충신”이라고 평하였다는 것이다. 사육신의 복권과 함께 숙종 24년(1698) 11월에는 端宗도 복권되었다. 사육신 복권과 단종 복위를 계기로 단종복위운동의 관련자에 대한 복권도 가속화되었다. 숙종 25년(1699) 4월에 李濡는 鄭保의 행적에 대해 소개하면서 단종이 복위된 만큼 사육신 외에 정보와 같은 인물들도 복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자, 숙종은 정보를 복권하고 이조참의에 추증한다. 숙종에 이어 영조 역시 단종복위운동 관련자 사적의 정비와 인물 顯彰에 대한 조처를 계속해서 확대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나 영조대에는 ‘단종제신’에 대한 포장이 활발하게 논의되던 숙종대와 달리 개별적 포장 요청과 수락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조대에는 생육신과 별도로 ‘八賢’이라는 범주가 형성되었다. 8현의 범주가 형성되면서 영조 8년(1732)에 영월 인사들은 창절사 오른편에 八賢祠를 건립하여 이들을 제향하였다. 영조 12년(1736)에 영월의 유생 朴賢齊 등은 팔현의 신위를 모신 八賢祠에 사액해 줄 것을 청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어 정조는 『莊陵史補』를 편찬하여 단종 및 제신의 사적을 종합 정리하였다. 여기서 정조는 제신의 사적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정리함으로써 그와 관련된 제반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사육신을 적극 변호했다가 죽임을 당할 뻔했던 鄭保 등을 ‘靖義諸臣’이라 칭하였다. 정조를 이어 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면서 정계는 단종과 諸臣의 사적을 다시 환기하였고, 이로 인해 제신에 대한 추가적인 포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보의 추가적인 추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후 고종 42년(1905) 남정철의 요청에 따라 고종은 정보에게 정2품 資憲大夫 內部大臣을 추증하였으나 시호는 끝내 내리지 않았다.

Abstract

When the restoration movement for King Danjong was taking place, JeongBo(鄭保) pleaded for Six honorable vassals(死六臣)'s innocence. He was sentenced to firmly tied to break on the wheel(轘刑) for an offense of disorderly talk(亂言罪). But the death sentence was reduced to imprisonment when the King learned that he was Jeong Mong-ju's grandson. He was exiled to YeoungIl(영일) and was moved to MunTae-Chon(문태촌) at DanSeong(단성). The persons involved with the restoration movement for King Danjong was carried out by 17th year of King Sukjong in 1691. King Sukjong himself lead the reinstatement based on King Sejo' order in which King Sejo said “they are contemporarily traitors but must be loyal subjects in the future.” With the exoneration of Six honorable vassals, King Danjong was also reinstated. The restoration movement for King Danjong of them were involved with accelerated. Yi-You(李濡) expressed his viewpoint that some people like JeongBo should be reinstated, introducing JeongBo's historical deeds. King Sukjong gave JeongBo a higher officiary title Yijochamui(吏曹參議) than when he was alive. King Yeongjo(英祖) followed suit. He also kept working at it and tried to take relevant measures. In 1736, a confucian named Park Jae-Hyun in Youngwol explained the historical deeds of Kim Shi-Seub(金時習), Nam Hyo-On(南孝溫), Weon Ho(元昊), Gweon Jeol(權節), Jo Ryeo(趙旅), Yi Maeng-Jeon(李孟專), JeongBo, Seong Dam-Su(成聃壽) and asked that the King should offer special support. King Yeongjo said that he would take appropriate measures after he confirm. But it was not realized. The category of ‘8 wise figures(8賢)’ was formed in King Yeongjo. Youngwol citizens built 8 wise figures shrine(8賢祠) on the right side of Changjeol-sa(彰節祠) and offered them a sacrificial rite. Following that, King Jeongjo put the deeds of King Danjong and other historical figures together by compiling Jang'reung Sabo(History of the King buried in Jang'reung, 莊陵史補). King Jeongjo wanted to wrap up the arguments by dividing them into three phases. King Jeongjo referred to JeongBo who was almost to be executed after he defended actively for Six honorable vassals as the Loyal Vassals of JeongEui(靖義諸臣). King Sunjo(순조) sat on the throne at the age of 11. The political circle awoked the deeds of King Danjong and the Loyal Vassals(제신). Rewards were offered to them. But, there was no additional Honoring(褒獎). According to Nam Jeong-Chel's request, JeongBo was granted the Jung second Grade(정2품) Jahundaebu(資憲大夫) Naebudaesin(內部大臣), but posthumous epithet was not offered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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