端宗과 定順王后 兩位 제사의 장기지속 -海州 鄭氏 寧陽尉派 家系 傳承을 중심으로-
Continuous Succession of Memorial Service of King Danjong and Queen Jungsun: Focusing on the Transmission in the Branch of Hyeju Jungs Youngyang-Wi Sect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비운의 왕인 端宗에 대한 일화는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단종과 定順王后 兩位의 제사를 약 200여 년간 한 집안에서 지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집안은 해주 정씨 영양위파이다. 영양위파가 단종과 정순왕후의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정종이 단종의 누이인 敬惠公主와 결혼한 것과 연관이 있다. 이 결혼이 성사된 것은 이전 鄭易-鄭忠敬-鄭悰으로 이어지는 왕실과의 연혼관계에서 기인한다. 정역의 딸은 태종의 아들 효령대군과, 정충경의 딸은 世宗의 아들인 영응대군과, 정충경의 아들 정종이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首陽大君의 癸酉靖難의 발생으로 가문은 위기에 봉착한다. 단종의 양위와 단종복위 사건, 魯山君으로의 강등, 금성대군 사건으로 영양위는 광주 유배 후 사사되었고, 경혜공주는 순천부의 관노에 편입되었다. 가문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유배 당시 임신한 공주의 아들은 정희왕후의 지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이들은 다시 유배에서 풀려나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鄭眉壽가 단종 사후 정순왕후의 시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순 왕후를 집에서 모셨다는 것, 왕후의 무덤을 해주 정씨 선산에 모셨다는 것, 그리고 단종과 정순 왕후 양위의 제사를 약 200여 년간 제사지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숙종대 단종이 복위되면서 가문은 다시 조명되었다. 정순왕후의 능을 思陵이라 칭하는 대신 주위에 있는 무덤으로 그대로 두게 하였다. 그리고 단종과 정순왕후에 관련된 사적의 찬술에 참여하거나 벼슬을 내리는 등 국가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Abstract
There are many of tragic stories about the King Danjong. But few knows that The memorial service of King Danjong and Queen Jungsun had been done in same family during 200 years. The very family name was Hyeju Jungs Youngyang-Wi Sect. The memorial servicel was the reason why they had connection with the marriage between King Jungjong and Dangjong’s sister, princess Kyunghye. The marriage was based on the relationship of the Royal Family’s arranged marriage that had been succeeded among Jungeuk, Jungchungkyung, and Jungjong. Jungeuk’s daughter married Taejong’s son, Hyoryung and Jungchung-kyung’s daughter was with Sejong’s son, Mungjong’s daugher Kyunghye got married Jungjung-kyung’s son Youngeung. But as the rebellion Kyeujeong-ran broke out, the family fell into the crisis. Younyang-wi who involved in the scandal of Danjong’s abdication and restoration, Rosan-gun’s degradation and the event of Kumsung. As the result of that, the princess Kyunghye was enlisted as an official slave. But her son whom she was going to have a baby survived support of the gueen Junghee. After that time, the family was released from the exile, and finally be one of the member of Royal family. Last at not least, Jungmisu became a adopted son-in-law of the queen junsun after death of Danjong. And he served Jungsoon faithfuly as a step son. After her death, he buried her in the Hyeju Jungs graveyard. Moreover Jungs held a memorial ceremony to pray for Danjong and Jungsun during 200 years. As a result, with the Danjong’s restoration in Sookjong regime, Jungs family became the center of public attention. The roral tomb of Jungsun was addressed with Sanung, and treated in same as nearby tombs. And finally their historical value and government position was officially restored by the regime.
참고문헌 (18)
- "朝鮮王朝實錄",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2-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 관계" (2003), 탐구당문화사
- 김경수, "세조대 단종복위운동과 정치세력의 재편", 사학연구, (83), pp.73~114 (2006), 한국사학회
- 김효경, "단종 제사와 신앙의 전개 과정", 역사민속학, (22), pp.159~188 (2006), 한국역사민속학회
- 남양주시지편찬위원회, "남양주시지 2-문화재와 인물" (2000), 도서출판 큰기획
- 2006년 경기도 일반도산문화재 다량 소장처 실태조사 보고서, "문화재청", ~ (2006)
- 邊英燮, "姜世晃의 知樂窩圖", 미술사학연구, 181 (1989)
- 宋日基, "海州鄭氏 宗宅 古文獻 硏究", 書誌學硏究 (2008), 書誌學會
- 안승준, "조선시대 사랑과 이혼: 기별부인(棄別夫人) 정씨 이야기, In 日記에 비친 조선 사회" (2012), 한국학중앙연구원, 藏書閣
- 윤정, "숙종대 端宗 追復의 정치사적 의미", 한국사상사학, (22), pp.209~246 (2004), 한국사상사학회
- 이근호, "16~18세기 ‘단종복위운동’ 참여자의 복권 과정 연구", 사학연구, (83), pp.115~156 (2006), 한국사학회
- 이현진, "조선후기 단종 복위와 충신 현창", 사학연구, (98), pp.41~89 (2010), 한국사학회
- 張熙興, "朝鮮時代 政治權力과 宦官" (2006), 경인문화사
- 진상원, "단종복위 모의자들의 伸寃과 追尊", 역사와경계, (64), pp.29~60 (2007), 부산경남사학회
- 崔承熙, "朝鮮初期 政治史硏究" (2002), ㈜지식산업사
- 한국학중앙연구원, "2012년 장서각 학술대회-해주정씨를 통해 본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존재양상" (2012),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海州鄭氏寧陽尉派譜編纂委員會, "海州鄭氏寧陽尉派譜(乾)" (1981), 農經出版社
- 황인규, "조선전기 왕실녀의 가계와 비구니 출가-왕자군의 부인과 공주를 중심으로 한 제기록의 검토-", 한국불교학, (57), pp.179~207 (2010), 한국불교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