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지소극장의 체험과 홍해성 연극론의 상관성 연구
A study on the experience of the Tsukiji small theater and the relation of the dramatic theory of Hong hae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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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의 연구목적은 축지소극장과 홍해성의 영향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홍해성은 1926년 6월부터 1929년 3월까지 축지소극장에서 배우로 활약한 매우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1930년 귀국하여 축지소극장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근대극 운동을 시작하였다. 홍해성의 대표적인 연극론부터 살펴보면, 크게 관중양성론, 번역극 도입론, 이상적인 배우론, 동지적 단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관중양성론은 일반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축지소극장의 선체험이 매우 강하게 작용한 논리이다. 홍해성은 대중들까지도 근대극운동을 함께 펼쳐나갈 동지로서 육성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둘째, 번역극 도입론은 축지소극장의 방법론을 차용한 것이다. 연극의 불모지였던 조선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근대극 운동을 펼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번역극 도입론을 강조하였다. 셋째, 이상적인 배우론은 홍해성 자신의 배우 체험이 바탕이 된 것이다. 이상적 배우란 항상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째, 동지적 단결론은 축지소극장에서 몸소 체험했던 끈끈한 인간적 유대라는 추억이 바탕이 된 것이다. 소극장의 회원들이 동지적 단결해야 결국에는 모든 대중들까지 동지로 규합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축지소극장과 극예술연구회의 제1회 공연과 제2회 공연으로 올려진 <검찰관>과 <해전>의 관극평을 통하여 홍해성의 특징과 위상을 밝혀낼 수 있었다. 홍해성은 당시로서는 축지소극장에서 직접 공연을 경험했던 매우 특이한 존재였기 때문에 무척 많은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는 우선 축지소극장의 연출을 그대로 답습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극장, 배우, 무대연출 등 공연환경이 매우 열악했던 당시 상황에서는 축지소극장식 공연을 단순히 모방하기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대 수준이 높았던 극예술연구회의 회원들은 홍해성의 연출력에 대해서 서서히 실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홍해성에서 견딜 수 없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결국 경제적 궁핍이 함께 겹치면서 홍해성은 극예술연구회를 떠나 동양극장의 지도적 연출가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Abstract
本論文の目的は洪海星と築地小劇場の関係を明らかにすることである。洪海星は1926年6月から1929年3月まで築地小劇場で俳優として活躍した人物である。彼は1930年に朝鮮に帰国し、築地小劇場の体験を土台にして独自の演劇論を樹立した。洪海星の代表的な演劇論は、観衆養成論、翻訳劇の導入論、理想的な俳優論、会員制の同志的な団結論で要約することができる。 観衆養成論は、築地小劇場の知識人中心の近代劇運動に対する批判から出た理論である。洪海星は一般の大衆に至るまで観客として積極的に育成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主張した。翻訳劇の導入論は、初期の築地小劇場が翻訳劇だけを公演した方式をそのまま収容したものである。理想的な俳優論は、彼自身の築地小劇場体験を土台にして作り出した形而上学的な俳優論である。洪海星は俳優が常に社会的な責任を持っていること意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強調した。会員制の同志的団結論は、築地小劇場で自ら体験した人間的な紐帯関係を積極的に劇壇の運営方法論として利用したものである。劇芸術研究会は、最後にはすべての大衆を同志とし糾合する時が来ると楽観的に期待しながら、少数の会員制で始まったのである。 洪海星は、「検察官」と「海戦」の観劇評を通じて演出家としての洪海星の特徴と地位を明らかにした。彼は、築地小劇場で演技論と演出論を体系的に学習したという独特の経歴ゆえ、朝鮮の演劇人たちから多くの期待を受けた。しかし、劇芸術研究会が築地小劇場と比べてすべての状況が劣悪だったため、洪海星の演出は演劇人の期待を超えことはできなかった。劇芸術研究会内での洪海星の地位はますます低くなり、大衆劇壇である朝鮮演劇社の作品を演出したという理由でさらに非難を浴びるようになった。このような不利な状況が重なり、洪海星は仕方なく劇芸術研究会を去り、新しい活路を探すしかなかった。この時、ちょうど東洋劇場が開館し、洪海星は指導的な演出家としてそこに席を移す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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