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공연예술로서의 야담(野談)과 야담대회
Yadam(Historical Tale) and Yadam Contests as the Modern Performing Arts
0
조회
0
다운로드
1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연구는 192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야담대회’를 근대적 공연예술로 규정하고 당대의 자료를 통해 야담대회의 공연예술적 면모를 구체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근대 극장 공간 속에서 진행된 다양한 공연예술들의 생성과 길항, 교섭관계의 일단을 추적해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인쇄매체를 존재기반으로 삼았던 야담은 1920년대 후반 김진구가 이끈 ‘조선야담사’를 통해 민중교화운동의 일환인 ‘야담운동’으로 변모하는데, 그 방법은 전래로부터 내려온 ‘독물(讀物)’을 벗어나 근대 극장과 결합하면서 야담대회 즉, 공연예술의 형식을 지향하게 되었다. 이것은 ‘야담’ 자체를 강담이나 고담 등의 연행으로 파악했던 김진구의 태도에서 비롯된 바, 야담대회는 그 출발부터 공연예술적 지향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 각 레퍼토리는 야담사의 의도에 따라 관객에게 교훈과 감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구성을 취했으며, 필요에 따라서 다른 공연예술과 함께 기획되기도 하였다. 야담사 1인에게 집중하는 공연형식의 특성에 따라 야담사는 점차로 강한 스타성을 띠게 되었고, 김진구의 뒤를 이은 윤백남은 스타 야담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야담대회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할 수 있는 실내공간에서 진행되었고, 평균 20전 정도의 청담료를 지불한 관객들은 남녀노소의 다양한 계층을 아울렀다. 야담대회가 거듭되면서 공연예술적 특성이 강화되고 거기에 자본의 욕망이 결합되면서 야담대회는 점차로 교훈과 계몽에서 흥미와 오락으로 변화되어갔는데, 거기에는 야담대회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 검열도 큰 이유가 되었다. 근대적 미디어 극장은 이렇게 전대로부터 이어져오던 서사물인 야담을 공연예술로 작동시켰으며, 이는 ‘담류’의 다양한 장르분화와 상호교섭관계를 만들어내는 토대로 기능했다.
Abstract
Yadam was based on printed media traditionally, but in 1920's second half, Yadam was transformed the yadam movements by Kim Jin-gu and Chosun yadam sa. Kim Jin-gu was combined Yadam with theatre as modern media, so, Yadam was not any more Literary genre. Yadam contests that planned by him brought great changes in its train. It became a genre of modern performing arts. Yadam contests as a modern performing arts had some elements. The first was Yadam teller, the second was stage of indoor theatre, the third was audience who paid some money for admission, the forth was repertory about the Historical story of Chosun, the fifth was the backing of the media. Yadam teller was as like as an actor, that he performed yadam for audience, and he became a star. Yoon Baek-nam, who stands head and shoulders above Yadam tellers, was very famous star. The stage of Yadam contests was prepared any place included semi-theatre institution(a space built on public purpose like town house, village hall, school etc.) that could gather large audience. The audience of Tadam contests was without distinction of sex or age, and the admission that they paid was 20jeon(20錢) on average. The repertory was consist on increased audience's emotions, and the backing of the media made Yadam contests for a public entertainments. The theatre of the modern media made Yadam that continued to tradirional literary for a modern performing arts, and it was very dynamic space that performed a function to genre differentiation of Dam-classes as modern performing arts.
참고문헌 (22)
- "동아일보", ~
- "조선일보", ~
- "중외일보", ~
- 공임순, "식민지 시기 야담의 오락성과 프로파간다" (2013), 앨피
- 고은지, "20세기 '대중 오락'으로 새로 태어난 '야담'의 실체", 정신문화연구, 31(1), pp.103~129 (2008), 한국학중앙연구원
- 공임순, "재미있고 유익하게, ‘건전한’ 취미독물 야담의 프로파간다화", 민족문학사연구, (34), pp.336~364 (2007), 민족문학사학회
- 김준형, "야담운동의 출현과 전개 양상", 민족문학사연구, 20, pp.146~177 (2002), 민족문학사학회
- 김준형, "19세기 말~20세기 초 야담의 전개 양상", 구비문학연구, (21), pp.165~208 (2005), 한국구비문학회
- 배선애, "1920年代準劇場機關과 主體形成의 樣相", 대동문화연구, (69), pp.309~346 (2010), 대동문화연구원
- 배선애, "大邱慶北地域의 文化 環境과 朝鮮人 劇場의 로컬리티 -大邱 萬鏡館을 中心으로", 대동문화연구, (72), pp.5~33 (2010), 대동문화연구원
- 신상필, "日帝時期 野談大會의 현장 -?開城野談行???野談南國行???南朝鮮野談巡訪?을 중심으로-", 漢文學報, 16(1), pp.315~333 (2007), 우리한문학회
- 위경혜, "식민지 개항도시 극장의 장소성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72), pp.35~75 (2010), 대동문화연구원
- 이경돈, "『別乾坤』과 近代 趣味讀物", 대동문화연구, (46), pp.249~287 (2004), 대동문화연구원
- 이동월, "야담사 김진구의 야담운동 연구", 박사, 국어국문학, pp.2007
- 이동월, "근대 ‘야담가’의 존재와 구연 활동", 구비문학연구, (34), pp.119~153 (2012), 한국구비문학회
- 이순진, "1930년대 조선 영화문화의 변동과 조선인 영화상설관의 소멸 -단성사의 몰락 과저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72), pp.157~200 (2010), 대동문화연구원
- 이승희, "공공 미디어로서의 극장과 조선민간자본의 문화정치", 대동문화연구, (69), pp.219~259 (2010), 대동문화연구원
- 이승희, "조선극장의 스캔들과 극장의 정치경제학", 대동문화연구, (72), pp.115~156 (2010), 대동문화연구원
- 이호걸, "식민지 조선의 문화사업, 극장업", 대동문화연구, (69), pp.173~218 (2010), 대동문화연구원
- 임형택, "야담의 근대적 변모", 한국한문학연구, (창립20주년기념 특집) (1996), 한국한문학회
- 의 자리, "상허학보", 2002, 71~97, pp.상허학회
- 황병주, "식민지기 公的空間의 등장과 公會堂", 대동문화연구, (69), pp.261~307 (2010), 대동문화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