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드라마센터에 나타난 유치진의 연극관
A Study on Yoo Chijin's View of the Theater from the Drama Center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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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유치진은 1962년에 드라마센터를 지었다. 드라마센터는 극장과 아카데미, 도서관을 가진 종합 공간이었는데, 그 중 극장 드라마센터는 특이한 형태의 무대를 가진 중극장으로서, 한 번도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적이 없는 극장이었다. 드라마센터를 후원했던 록펠러재단이나 연극인들은 극장 드라마센터가 소극장으로 지어져서 당대의 동인제 연극을 지원하기를 바랐지만, 관객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대극장을 선호했던 유치진은 연극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졌던 소신으로, 그리고 세계 연극 시찰 후 계속해서 강조했던 가면극의 현대적 계승을 주장하면서 중극장을 지었다. 이는 그가 1930년대부터 주장했던 ‘관중 본위’를 위한 것으로, 더 많은 대중이 연극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치진의 연극 이상을 가시화한 극장 드라마센터의 무대는 새로웠으나, 유치진은 여기에서 셰익스피어극과 리얼리즘 연극을 공연하고, 재정난으로 극장 드라마센터의 문을 닫았다. 극장 드라마센터의 무대에 셰익스피어극은 적합했으나 리얼리즘 연극은 맞지 않았는데, 이는 유치진이나 주로 연출을 맡았던 극장장 이해랑이 모두 리얼리즘 연극에만 익숙해서 새로운 무대에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치진은 서구의 리얼리즘극과 우리의 춤극을 결합한, 즉 가면극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새로운 극을 개발하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무대의 제대로 된 활용은 후속 세대에 와서야 가능했다. 유치진은 관객과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 극장 드라마센터를 지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바랐던 새로운 무대를 통한 한국 연극의 발전은 달성하지 못했다.
Abstract
In 1962, Yoo Chijin built the Drama Center, which was a comprehensive space with a theater, an academy, and a library. Among them, the theater had 473 seats with unique stages, and such kind of theater had never built in Korea before. The Rockefeller Foundation which supported to build the Drama Center and people in the theater hoped that it should be built as a small theater in order to sponsor the contemporary drama festivals, but Yoo Chijin, who preferred a big theater for enhancing the intimacy with the audience, built a medium size theater because it was a big theater that he had proposed since the start of his career and after his world theater tour, he realized the need of such a theater for the modern succession of masquerades. The stages of the Drama Center which visualized Yoo Chijin's ideal of a theater were new, but he performed only the Shakespeare's dramas and the realism dramas and unfortunately it wasn't long before the Drama Center was closed because of financial troubles. The Shakespeare plays were suitable for the stages of the Drama Center, but the realism plays did not match with the stages because Yoo Chijin and Lee Haerang could not to adapt to the new stages because both were used to realistic theaters. The proper application of the new stages was possible only in the next generation of theater people. In conclusion, Yoo Chijin built the Drama Center theater to enhance the intimacy with the audience, but he did not achieve his goal of leveling up Korean dramas with the new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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