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史』(조선사편수회 간행) 편찬과 만선사의 상관성 ―『朝鮮史』 제 3편을 중심으로
The Correlation between P’yŏnsuhoe’s Compilation of Joseonsa and Manchuria-Korea History : A focus on the Third Volume of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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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대표적인 만선사학자였던 이나바 이와키치가 편찬을 총괄한 조선사편수회 간행 <朝鮮史> 제 3편(고려시대)과 만선사의 관련성을 살펴본 것이다. 朝鮮史 편찬을 위해 조선에 부임한 이나바는 이마니시 류우로 대변되는 이전 연구자들과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주도한 각종 조사 사업이나 ‘반도사 편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마니시는 일본과 종족적으로 동일한 반도 남부의 ‘韓種族’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서술하며 고구려로 대변되는 북방의 역사를 한국사에서 배재하였다. 반면 이나바는 당시 일본인 연구자들이 한국사를 ‘일본사’의 범주에서 접근하는 것을 비판하며 한국사를 대륙-만주와의 관련 속에서 ‘東洋史化’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사를 연구함에 있어 대륙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반도라는 ‘토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한국과 만주와의 불가분한 관계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이나바가 주임을 맡은 朝鮮史 제 3편은 그가 품고 있던 만선사적 관점이 반영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나바는 朝鮮史 제 3편의 주임을 맡기 이전부터 고려시대의 특징으로 거란, 여진, 몽골 등 만몽지역의 민족이 끊임없이 등장했던 것을 꼽았으며, 이러한 그의 생각은 朝鮮史 제 3편에 반영되었다. 편찬 관계자들이 朝鮮史 제 3편에서 주목해야 하는 사건으로 遼․金․宋․元 등과 고려와의 관계를 가장 우선적으로 꼽고 있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른바 ‘대몽항쟁기’, 朝鮮史 편찬 관계자들이 중요시 했던 것은 고려의 항쟁이나 국내 정치 변화를 알려주는 사료가 아니라 만선사적 조망에서 중요시되었던 일본과 元의 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 사료들이었다. 이는 일본사의 타자로서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漢民族, 蒙古民族, 東胡系民族 3자의 관계로 재구성하는 가운데 일본사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던 이나바의 만선사적 구상, 또 朝鮮史 제 3편이 간행될 당시 발표된 이나바의 연구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한편 고려 전기의 사료는 매우 부족하며 후기로 감에 따라 문집류를 비롯하여 금석문들도 증가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지만 『朝鮮史』 제 3편에서 활용한 사료들은 그와 반대 경향을 보인다. 즉 후반으로 갈수록 한국측 사료, 특히 금석문의 활용은 감소하는 반면 대륙과 일본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에 필요한 외국 사료, 특히 일본측 사료의 이용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료의 활용 역시 간접적으로나마 朝鮮史 제 3편 편찬시 여기에 실을 사료를 선별함에 있어 만선사적 관점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이나바는 자신이 추구했던 만선사적 관점에서 고려시대를 조망하는 가운데 朝鮮史 제 3편의 후반으로 갈수록 元 또는 일본과 관련된 사건을 자세히 정리하고 그와 관련된 사료의 소재를 알려주어, 향후에도 이를 통해 이 시기가 조명되기를 희망했다고 하겠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correlation between P’yŏnsuhoe’s Joseonsa (vol.3) that led by Inaba Iwakichi’s editing, who was representative of a Manchuria-Korea- historian and Manchuria-Korea-History. Regarding Korean history, Inaba who was stationed in Korea for the purpose of compiling the Joseonsa and former Korean-history-researchers representing Imanishi Ryu maintained different views. Imanishi described the Korean history as one of the Han ethnic group, which was akin to that of a Japanese ethnic group living in the southern part of the peninsula. On the other hand, Inaba criticized Japanese researchers who studied Korean history as one tied to Japan’s history. He thought Korean history should be studied as a part of Oriental history and insisted that Korean history should be considered in connection with Manchuria and Mongolia. With the Joseonsa vol.3, Inaba served as the chief and reflects his view of Korean history. Before he taking charge of Joseonsa vol.3, Inaba regard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Goryeo dynasty as tied to the appearance of Manchuria and Mongolia people, such as the Kitan, Jurchen, and Mongolians. Inaba’s perspective on the Goryeo Dynasty was reflected in Joseonsa vol.3. The editors of Joseonsa vol.3 also regarded the relationship between Liao, Jin, Song, Yuan and Goryeo as the most significant components in Joseonsa vol.3. In particular, with the so-called ‘the Goryeo Dynasty`s War Period against Mongolian Invasion’, the editors of Joseonsa vol.3 relied on historical materials that emphasized the relationship between Yuan and Japan, rather than that of the Anti-Mongol Struggle or changes in domestic politics of Goryeo. This coincided with Manchuria-Korea historical plans to raise the status of Japanese history through the reorganization of Northeast Asian history into the tripartite relationship with the people of China, Mongolia and Donghu (東胡). And the editors’ emphasis coincided with Inaba’s work published at the time of the compilation of Joseonsa vol.3. The general view is that few historical materials are found in early Goryeo period and more materials such as collections of writings, epigraph are found in the late. However, the historical materials used in Joseonsa vol.3 point to the opposite. In the latter half of Goryeo, the use of Korean historical materials (especially epigraph materials) decrease, while the use of foreign historical materials (mostly Japanese materials) increasingly point to a relationship with Japan. Indirectly, the tendency of using historical materials with Manchuria–Korea historic perspectives was used in the compilation of Joseonsa 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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