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과 ‘식민’의 중첩적 표상 -「만주국」 시기 南滿洲 농촌의 사회구성과 농민의 收支실태-
The Social Composition and Farmers’ Lives in the South Manchurian Rural Area, 1932~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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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북만주 농촌과 마찬가지로, 남만주 농촌에서도 토지의 개방과 불하가 늦게 이루어지고 극소수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면서 토지소유관계가 극심한 불균등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것은 남만주 농촌 내에서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남만주 농촌에서도 북만주 농촌만큼은 아니지만, 소작농이나 고농의 비중이 컸다. 이들 소작농이나 고농은 농촌 내의 과잉인구를 형성해 값싼 노동력의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북만주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만주 농촌에서의 富農경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들은 분명 남북 만주가 ‘개척지’로서 지니게 된 요인이었다. 한편 일본의 만주점령으로 야기된 치안불안은 농산물 유통이나 농업노동력 수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 식민당국의 戰時경제통제정책, 특히 농산물의 강제출하와 물가의 통제 등은 남만주 농민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것은 분명 만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데서 야기된 요인이었다. 한마디로 남만주 농촌에서는 북만주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척지적 요소’와 ‘식민지적 요소’가 충첩적으로 작용하면서 독특한 지역적・사회적 특수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Abstract
Like the rural areas in northern Manchuria, the opening and landing of land in rural areas in southern Manchuria was delayed. Only a few people prospered and the benefits of land ownership relationship were unevenly distributed. The consequent disparity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in the rural areas of southern Manchuria led to many peasant farmers and agricultural workers residing there. These peasants and agricultural workers not only suffered from issues related to overpopulation, but served as an area with cheap labor. As in the case of the northern rural half, the cheap and rich labor force in the southern Manchurian province also acted as a stimulate of farm management. In addition, anxiety and security concerns related to Japan’s occupation had a negative impact on agricultural distribution and agricultural labor supply. The situation was further exacerbated with Japanese colonial authority’s economic control policies, especially the forced shipment of agricultural products and the control of prices, which made peasant farmer life difficult. Similar to the northern rural area of Manchuria rural area, the ‘pioneering factor’ and ‘colonial factor’ in the southern rural area interacted in ways that reveal regional and social peculiar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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