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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시기 南滿洲 촌락의 형성・운영과 농민생활실태

The Formation of Southern Manchurian Villages and the Farmer’s Life in the Manchuku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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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남만주에서 토지는 극소수 특권층에게 불하되었고 중국인 이민자들에 의해 개간되었다. 개척 과정에서 토지소유의 불균등 현상이 극심했다. 남만주의 촌락들은 토지를 선점한 극소수 특권층 대지주와 關內에서 밀려들어온 한족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남만주 촌락에서는 과잉인구와 分家制度에 의해 토지가 零細化되어 생산성이 낮았으며, 이동률이 높았다. 특히 조선인들은 생계곤란 문제로 만주와 조선 사이를 流動하고 있었다. 촌락민 중에는 무직자가 많았고 문맹률이 높았다. 촌락에서는 지주 중심으로 자치가 행해졌고 종교적인 공동체 활동을 통해 촌락민들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졌다. 중국인과 조선인 사이에는 경작방식 등을 둘러싸고 민족적・계급적 갈등이 상존하고 있었으며, 중국인의 위상이 조선인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각 촌락에는 부재지주들의 소유지 비중이 매우 높았으며, 이들 중에는 일본 식민기관이나 일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하층의 촌락민들은 생계곤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촌락민은 보갑비 등의 치안비용을 부담하고 있었다. 교육 방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했다. 결론적으로 남만주 농촌에서도 북만주 농촌만큼 선명하지는 않지만, 극심한 토지소유의 불균등 현상과 그로 인한 농민층의 양극화, 치안불안이 야기한 엄청난 규모의 부재지주 비율, 높은 인구 이동률, 촌락에 대한 만주국 당국의 식민지적 통제・감시와 宣撫활동, 치안비용의 부담과 노역, 아편재배의 음성적 조장 등 ‘개척지적 요소’와 ‘식민지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촌락의 형성이나 사회구성, 운영과정, 촌락민의 각종 생활실태에서 지역적 특수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Abstract

In South Manchuria, land seldom included the presence of the privileged class, which the work of Chinese immigrants supplanted. Throughout the pioneering process, land inequality became a grim reality. Southern Manchurian villages formed in conditions often devoid of landlords, but plentiful in with a population of poor Chinese immigrants. These conditions often spelled high rates of migration, with farmers finding it difficult to survive and settle. Koreans contributed to the migratory flows often pushed and pulled between Manchuria and Joseon due to poverty. Many of the consequently unemployed farmers also lacked basic literacy skills. In these villages, religious community activities helped to maintain order in ways that led to self-government without landlords. However, ethnic and class conflicts often arose between the Chinese and Koreans, which often displayed signs of the higher social status of the Chinese enjoyed in comparison to their Korean counterparts. Each village had a very high proportion of landowners, including Japanese colonial institutions and Japanese villagers, which often resulted in farmers bearing high burdens when it came to ‘security costs’ or protection racket costs. Moreover, the wide education level gap between landowners and poor farmers did not help the latter’s plight. Like rural villages in North Manchuria, pioneering and colonial elements played integral roles in rural South Manchu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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