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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전반서간도독립운동기지건설과 안동 혁신유림의 역할

Constructing the Seogando Independence Movement Base and Andong’s Innovation Yurim in the Early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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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서간도가 신민회의 국외 독립운동기지로 건설되는 과정을 안동 혁신유림의 활동을 통해 살펴봤다. 서간도는 북간도와 달리 이회영·양기탁을 중심의 신민회와 안동의 이상룡 · 김대락 등의 혁신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독립운동기지가 건설되었다. 이들은 국내 가산을 처분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식구들과 함께 집단이주하였다. 이들은 안동을 떠난 지 40여일 만에 1911년 2월경 환인현 항도천에 도착하였고, 얼마 뒤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고자 내륙 깊숙한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로 향했다. 하지만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상룡과 김대락등은 집이나 토지를 제대로 얻지 못했고 몇 개월이 흘러 치발역복을 한뒤에서야 1911년 6월경 중국인들로부터 호감을 얻은 뒤에 토지를 빌어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를 열었다. 1912년 봄 중국 내 무창봉기가 일어나자 이상룡이 소대를 편성하여 혁명군을 도운 뒤로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에 오른 원세개를 찾아가 도움을받아 통화현 합니하에 비로소 토지를 구해 정착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신흥학교를 새롭게 만들어 무관을 양성하였지만, 수토병과 천재까지 겹쳐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였다. 경학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1912 년 말 총회가 열린 자리에서 경학사는 폐지하되 신흥학교는 유지하기로하였다. 이후 신흥학교는 새로운 인물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그동안 이를주도하였던 이동녕 · 이회영 · 이시영 등은 떠나갔고 김대락은 사망하였다. 이런 가운데 이상룡은 􋺷대동역사􋺸를 저술하여 역사 교재를 만들었고, 1916년경에는 자치단체 성격의 부민단을 결성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investigated Andong’s Innovation Yurim and its role in constructing SeoGando (⻄間島) at Sinminhoe (新⺠會) as the base for an independence movement. SeoGando’s construction depended on the work of Lee Hoe-young, Yang Gi-Tak, and Andong’s Innovation Yurim affiliates such as Lee Sang-ryong and Kim Daerak. In 1911, these pioneers sacrificed their personal incomes to travel for 40 days heading toward Yuha-hyeon, traversing from Andong to Hwanin-hyeon, to establish the first base for independence. They faced several travails along the way, including months without proper housing. Several accounts take note of their ‘Shaving Hair’(薙髮) and ‘Changing Clothes’(易服). However, their efforts were not in vain. In June 1911, they were favorably received by the Chinese, allowed to borrow land, and eventually organized a Gyeonghaksa Temple where they established the Sinheung Academy. This academy would subsequently become a training center for military officers, a position gained through the backing of future-Provisional President of China Yuan Shikai. He rewarded Lee Sang-ryong with land and settlement in Tonghua County Habniha for having assisted the Revolutionary Army during the 1912 Wuchang Uprising. Eventually, however, financial and natural disasters forced the founders to abolish the Gyeonghaksa while maintaining the Shinheung School. While the founders either left or died after the reorganization, Lee Sang-ryong went on to write a historical account in his Daedong History in 1916 before forming the local government’s Bumin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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