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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와 안보를 둘러싼 미일 교섭과 일본의 전략 ‒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를 중심으로 ‒

Japan’s Strategy in the US-Japan Negotiations over Security and Peace Treaty -Focusing on Yoshida Shig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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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본의 안전보장정책에 대한 연구는 ‘평화지향’적이거나 ‘대미의존’적인 관점에서 많이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추구하는 등 매우 의욕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본 논문은 이러한 일본의 안보 전략이 미일 간의 강력한 요구와 이해를 넘은, 다분히 일본 정책결정자들의 전략적 이해에 따른 의도적 결과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일본의 군비확장의 과정이 결코 ‘소극적’이거나 ‘대미의존’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측면에서 재고하고 있다. 강화교섭을 둘러싼 최대의 문제는 독립 후 일본의 안전보장을 어떻게 하는가에 있었으며, 요시다는 일본 재군비는 거절한다는 방침을 견지하면서도 경찰예비대 창설 등 국내 치안을 명분으로 한 점진적인 군비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화조약의 조정을 위한 미일 간의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되자, 요시다는 5만의 보안대 창설을 제안하는 등 미국의 재군비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조기강화를 실현시키고자 하였으며, 5만 명의 보안대야말로 장래 민주적 군대로서 훌륭하게 육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요시다가 재군비의 필요성을 주장한 사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결과적으로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요시다는 재군비에 동의하는 형식을 취하며 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는 바꿔 말하자면 강화문제와 기지문제가 재군비라는 단 하나의 행위로 모두 해결된 것을 의미한다. 즉 일본 재군비는 요시다 자신의 생각과 반드시 위배되는 것만은 아니었으며, 군대를 보유하기 위해서 먼저 경제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는 요시다의 생각은 결국 동전의 양면과 같은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일본의 경제부흥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우려를 근거로 내세운 요시다의 무군비 주장은 이 모든 정치적 전략을 봉인하기에 아주 적합한 수단이었다.

Abstract

Studies on the rearmament of Japan have a strong tendency to be dealt with in a position that Japan had to be led to the change of the US and international situations. However, it is necessary to reconsider a series of processes from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to the Japan-US Security Treaty in the aspect that they are not just ‘passive’. This is because the rearmament of Japan was not just necessarily against Yoshida’s own thought. The biggest problem over peace negotiation within Japan was “how security assurance for Japan after independence should be”, and Yoshida was holding fast to the policy that Japan refuses rearmament until peace treaty is concluded. But as the full-scale negotiation for adjustment of peace treaty with Dulles started in January 1951, Yoshida changed the existing position about rearmament and suggested the establishment of new security forces with 50 thousand soldiers including army and navy. About this fact, Yoshida himself revealed that there was no way except for yielding to the demand of Dulles but the facts that Yoshida was admitting necessity of Japan’s rearmament after the peace treaty are found in various places. Only, Yoshida was to promote gradual rearmament based on the strategy that economic groundwork should be fully prepared first in order to retain armed forces. In this aspect, Yoshida’s non-armament contention asserting the article 9 of the constitution and Japan’s economic revival and concerns of many Asian countries as the grounds was the means very suitable for sealing his political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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