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德馨의 전쟁경험과 일본인식
A Study on Lee Deok-hyeong's War Experiences and Perceptions of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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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李德馨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 그리고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를 전담한 인물이다. 전쟁 발발 전 일본 사신의 접대를 맡았던 그는 일본의 침략 가능성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華夷論에 근거하여 일본을 夷狄視하였다.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이덕형을 통해 강화협상을 진행시켜 나갔다. 그는 일본의 강화 요청을 거절하였는데, 그 이유는 명의 참전이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이 벽제관전투에서 패한 후 강화로 전쟁을 끝내려 할 때는 강화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명이 강화를 원하는 만큼 이를 피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전후 일본이 국교재개를 요청하자 이덕형은 국교재개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의 주역으로 여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사망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지 여부가 국교재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겼다. 또 일본 보다 조선이 상위의 입장에서 국교재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덕형은 히데요시와 함께 쓰시마섬(對馬島)을 전쟁의 주역으로 여겼다. 또 조일관계에서 쓰시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전후 쓰시마 공격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국교재개에 앞서 쓰시마를 조선의 藩屛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전기의 조선과 쓰시마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것이었다. 전쟁 중 이덕형은 일본군이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일정보를 탐색하였다. 전후 일본과의 국교재개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외교노선을 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일본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존재였고, 조선 보다는 아래에 위치하는 국가였다. 즉 화이론에 입각하여 일본을 이적시 한 대일인식 자체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Lee Deok-hyeong(李德馨)'s diplomatic activities toward Japan and perspectives he took to look at the country during 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1592. Lee Deok-hyeong began his involvement in Joseon's relations with Japan in 1588 when he entertained the envoys dispatched from Japan as Seonwisa(宣慰使). During the war, he was solely responsible for talks with the Japanese forces. When Japan made a request on peace in the middle of the war, he rejected it because he believed that Ming Dynasty would definitely provide supports to Joseon. However, he had no objection to a peace agreement between Ming and Japan, estimating that Ming would make peace real as long as it wanted peace. Lee Deok-hyeong placed huge importance on Tsushima in the process of Joseon's resuming its relations with Japan after the war ended. That is, he insisted Joseon should conquer Tsushima by force and put it under its influence before resuming its relations with Japan. At the same time, he also argued that Joseon should accept the trade request of Tsushima because he believed Tsushima should return to the pre-war state of being within the perimeter of Joseon. Regarding Japan as an enemy, Lee Deok-hyeong made it clear that Joseon was superior to Japan in all the aspects. He, however, acknowledged that the Japanese forces were strong through the war. In addition, he chose a realistic diplomatic route in making a peace agreement with Japan and resuming Joseon's relations with it and tried to obtain information about Japan by deploying Joseon's warriors to the camps of Japanese forces. Those changes illustrate that there were differences in his perspectives of Japan before and after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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