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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연판문계 와당의 형성과 전개과정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affiliated roof-end tiles with lotus petal design in Kogu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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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고구려 연화문 와당의 연화는 입체적이고 양감 있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연화의 형태는 동아시아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연꽃잎이 아니라 연봉오리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런 점에서 고구려 연화문 와당은 연판문 와당이 아니라 연뢰문 와당이었으며, 그러한 형태적 특징이 고구려 전시기 동안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처럼 고구려 연화문 와당은 연뢰문 와당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새롭게 유입되는 연판문 와당이 오히려 이질적인 형태로 간주되어 일정부분 거부감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고구려에서는 외래적인 연판문 와당을 그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존 와당의 기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단지 연판문 와당의 형태 요소를 부분적으로 결합시킨 연판문계 와당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판문계 와당의 출현은 고구려 와당이 다양화되는 6세기 초엽 경 국내성지역이 아니라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이 시기에 국내성지역에서는 기존의 구획선 연화문 와당이 소멸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구획선이 없는 연화문 와당, 인동문 와당, 귀면문 와당 등으로 전환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연판문 와당의 형태 요소는 전혀 수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배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6세기 초엽 경, 평양지역에서는 이질적이었던 연판문 와당과 그 형태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즉, 기존의 구획선 연화문 와당이나 복합문 와당의 기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연판문 와당의 형태요소들을 부분적으로 결합시킨 연판문계 와당을 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국내성지역은 평양지역의 와당을 포함한 외래적인 와당을 전혀 수용하지 않을 정도로 폐쇄성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평양지역은 외부 지역에서 유입된 외래적인 연판문 와당도 수용할 정도로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Abstract

Solid and embossed expression is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the lotus roof-end tiles in Koguryo. The appearance of lotus in this design was not lotus petal which prevailed in East-Asia but lotus bud. In this point, main stream of roof-end tiles in Koguryo was not lotus petal design but lotus bud design, and the trend continued without change all the time in Koguryo. The lotus petal design which derived from the outside was turned down because of it’s heterogeneity. Koguryo did not accept lotus petal design as it is. Instead they combined their existing designs with some components of lotus petal design. These affiliated roof-end tiles with lotus petal design appeared in Pyungyang area in the early 6th century. At that time in Guknaeseong area, as the roof-end tiles with dividing line were disappearing, new styles like roof-end tiles with non-dividing line, honeysuckle or monster mask design were accepted. But the elements of lotus petal design were eliminated utterly in the process. But in Pyungyang area, compared with Guknaeseong area, lotus petal design and it’s style elements were partly accepted in the early 6th century. In other words, in maintenance of existing designs like the lotus roof-end tiles with non-dividing line or the composite design roof-end tiles, they made affiliated roof-end tiles with lotus petal design which accepted some components of lotus petal design. In my opinion, the difference between Guknaeseong and Pyungyang area is derived from their cultural nature. While Guknaeseong area had a closed nature even they did not accept outside culture, Pyungyang had openness and pluralism to accept outsid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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