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선사의 초의차 완성과 그 영향
The Completion of Choui tea by Master Choui and its effect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차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 요소는 차이다. 좋은 차를 얻기 위한 노력은 최고의 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장인들이 사용했던 제다법의 변천사에 드러난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는 대흥사 승려로, 차의 이론을 정립하여 초의차(草衣茶)를 완성함으로써 대흥사(大興寺)에 전해진 사원차(寺院茶)를 복원했을 뿐 아니라 민멸 위기에 처했던 차문화를 중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관점에서 본 논문을 개진하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 후기는 차문화의 민멸기로 차를 아는 이가 드물었고 일부 호사가(好事家)들만이 중국에서 들여온 차를 향유했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차를 만드는 방법은 시대의 흐름을 등진 채 고려시대 유행된 단차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떡차가 생산되었으며 이는 식체, 이질, 감기약으로 사용하는 약(藥)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는 고려시대처럼 난만한 차문화를 향유하던 시대와는 다른 차(茶)의 유형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혹자는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며 차는 구증구포(九蒸九曝)나 삼증삼포(三蒸三曝)로 만든다는 얘기가 거론되어 혼란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다사(茶事)를 주도한 것은 소수의 사원 승려들이었기에 다산에게 차를 배웠다는 설은 재고되어야 한다. 한편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사원 차를 복원하여 초의차를 완성함으로써 경향의 사대부들에게 차의 가치는 물론 우리 차의 우수성을 알려준 것은 초의의 공이다. 이뿐 아니라 초의는 경화사족들과의 교유에서 그가 만든 초의차를 통해 깊이 있는 유불 교유를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초의에 의해 차의 본연의 가치를 드러내 그와 교유했던 이들의 심신을 안정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초의차의 특징은 심폐를 시원하게하며 답답한 울화나 번뇌를 씻어 주는 차의 원형적인 가치를 지닌 차였다. 이는 초의의 노력으로 집대성된 것인데 그 완성 시기는 대략 1840년 이후라 여겨진다. 물론 차문화의 흥망성쇠에 따라 차를 만드는 방법은 병다(餠茶: 떡차)에서 연고차(硏膏茶, 혹은 단차)로 다시 연고차에서 산차(散茶:잎차)의 시대로 발전되었지만 시대마다 다른 차의 특성을 보인다. 이는 차가 시대성과 사람들의 기호, 차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의차(草衣茶)는 초의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차를 즐기는 이들의 기호와 열의가 함의된 차였던 것이다. 이런 특징을 지닌 초의차의 제다법(製茶法)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대흥사의 다풍(茶風)으로 면면이 이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미래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Abstract
Admittedly, tea is a core element of tea culture. The effort to have high-quality tea is well depicted in the history of tea-making by passionate tea-masters to produce the best tea. This paper argues that Master Choui(草衣禪師 1786~1866), a monk of Daeheung temple, is the one who established the theory of tea, restored the temple tea tradition of Daeheung temple by completing Choui tea, and laid the foundation for re-invigorating the tea culture. As it is well known, in late Joseon period few had a deep understanding of tea. It is told that only some dilettantes enjoyed tea imported from China. Therefore, authentic tea-making skills had been gradually forgotten. Instead, it led to a production of Ddeok tea, a type of Dan tea which was prevalent in Goryeo dynasty. This was also used as medicine to cure indigestion, dysentery, and cold. Thus, tea of late Joseon was different from one that was enjoyed in a full-blown tea culture of Goryeo. Some argue that Jeong Yakyong(丁若鏞 1762~1836) taught the monks how to make tea, and that Gujeunggupo(steaming and drying nine times) or Samjeungsampo(steaming and drying three times) were the authentic way to make tea. Those claims, however, are fairly misleading. Especially, it should be reputed that Jeong Yakyong taught monks tea-making skills, since a minority of temple monks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tea community. Meanwhile, Choui was the most important contributor in introducing the superiority of Korean tea as well as value of tea to the nobility of tendency, by completing choui tea to restore temple tea in difficult times. In addition, it could expand the deep exchange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for Choui via choui tea which he made, in exchange with the nobility at capital city in Joseon era. This manifested the true value of tea by Choui and stabilized the mind and body of those who interacted with him. In particular, choui tea had a special character, that of an intrinsic value of tea, which cooled cardiopulmonary and washed stuffy rage or agony. This was compiled by Choui, and the time of completion is considered as after 1840 approximately. In accordance with rise and fall of tea culture, the way to make tea has developed from Byeong tea(餠茶) to Yeongo tea(硏膏茶, or Dan tea), and Yeongo tea to San tea(散茶, or leaf tea). Each stage has its own distinctiveness. This is because tea is reflection of trend, preferences, and perceptions of the time. Therefore, choui tea reflected not only the time Choui had lived, but also the taste and fervor of people who enjoyed tea. Tea-making method of choui tea with such characteristics has been inherited as tea tradition of Daeheung temple by his followers up until now, and most possibly to future as well.
참고문헌 (49)
- "대한화사전", ~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佛敎直傳宗派", ~
- 이운해, "扶風香茶譜", ~
- 아암, "아암유고", ~
- 김정희, "주상운타첩", ~
- 초의, "茶神傳", ~
- 초의, "동다송", ~
- 신위, "남다시병서", ~
- 박영보, "남다병서", ~
- 黃裳, "巵園遺稿", ~
- 太古, "太古和尙語錄", ~
- 淸虛, "淸虛集", ~
- 편양, "편양당집", ~
- 월저, "월저대사집", ~
- 환성, "환성시집", ~
- 蓮潭, "蓮潭大師林下錄", ~
- 초의, "선문사변만어", ~
- 백파, "선문수경", ~
- 범해, "범해선사시집 권2(補遺)", ~
- 범해, "東師列傳", ~
- 아암, "兒庵遺稿", ~
- 柳得恭, "京都雜誌", ~
- 丁若鏞, "雅言覺非", ~
- 丁若鏞, "與猶堂全書補遺", ~
- 丁若鏞, "茶信契節目", ~
- 丁若鏞, "江津白雲洞李大雅書几敬納", 다산정약용선생유물특별전, ~ (2005)
- 丁若鏞, "爲慈宏證言, in 다산과 추사", 추사박물관 2015 상반기기획전, ~ (2015)
- 丁若鏞, "국역다산시문집", ~
- 화봉책갤러리, "草衣沙門意恂謹再拜奉書", 명선초의전, ~ (2011)
- 이유원, "嘉梧藁略", ~
- 이유원, "임하필기", 대동문화연구원
- 황윤석, "이재난고", ~
- 서유구, "임원경제지", ~
- 沈初, "西清筆記", ~
- 김명희, "附原韻", 초의시고 권 4, ~
- 금명, "栢悅錄", ~
- 금명, "다송시고", ~
- 金正喜, "阮堂全集", 천. 지. 인. 과천문화원, ~ (2005)
- 龍雲, "草衣禪師全集" (1985), 아세아문화사
- 신헌, "금당기주" (1990), 아세아출판사
- 송재소, "한국의 차문화천년 7" (2014), 돌베개
- 정민, "조선의차문화" (2011), 김영사
- 박동춘, "초의선사의 차문화연구" (2010), 일지사
- 박동춘, "박동춘의 한국차문화사" (2015), 동아시아
- 박동춘, "추사와초의" (2014), 이른아침
- 한태식, "白龍城스님과 한국불교의 계율문제", 대각사상, (10), pp.81~132 (2007), 대각사상연구원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권중, 율종", pp.79~
- 퇴경, "조선의 율종", 불교지, (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