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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도덕윤리교육의 역사와 현대 도덕교육의 혁신론(3)– 고려시대의 仁孝교육을 중심으로 –

Innovation of our country's history and moral ethics of modern moral education(3) - Focusing on the education of the Goryeo Dynasty(仁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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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공자의 유학(儒學)을 수용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이어 고려(高麗)시대는 본격적으로 정초가 세워졌다. 신라를 이은 고려는 태조13년(930)에 학교를 창설하며 국학(國學)이라 했다. 성종11년에 종합대학의 체제를 갖추었는데 중앙의 학교명은 국자감(國子監)으로 바뀌었다. 성종은 유학자 최승로를 중용하여 교육을 중흥시키고 문화정책을 폈다. 그러나 왕성한 교육이 이루워지지 못하다가 인종(仁宗)(1122~1146)때부터 유학교육이 본격화 되었다. 의종에서 원종때까지는 무신란으로 인한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충렬왕(1122~1146)때에 안향(安珦)에 의하여 주자학이 전래되어 도덕윤리가 강조되고 유학이 새로운 전기를 불러왔다. 고려시대 중앙의 국자감은 당(唐)의 학제를 본받은 것으로 정상적으로 정비되기는 仁宗때 부터이다. 교수과목은 구경(九經)을 각기 一經으로 하고 『효경』과 『논어』를 공통 선수과목으로 하여서 겸통(兼通)하게 하였다. 우리계레의 조상인 삼성조(三聖朝)를 원천적으로 계승한 공자학의 중핵이 仁孝學이었기 때문에 신라의 國學에서 『효경』와 『논어』을 공통필수과목으로 했던 원칙을 준수한 것이다. 이를 계승한 고려에서도 논어』와 『효경』을 통해서 仁孝를 중심으로 학교교육을 통하여 인간의 근본을 배양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사학(私學)으로는 정계(政界)의 원노였으며 명망이 높은 최충(崔沖984-1068)이 공직에서 은퇴하면서 국학(國學)과 향교(鄕校)가 전란으로 인하여 부실해지면서 사숙(私塾)을 열었었는데 전국에서 학생이 운집(雲集)하였다. 이때에 학당에는 아홉 개의 전문강좌가 개설되었는데 이른바 ‘구재학당(九齋學堂)’이라고도 하고 한편으로 ‘시중최공도(侍中崔公徒)’, ‘문헌공도(文憲公徒)’라 하였다. 私學이 약300여년동안 고려의 文運과 학풍을 일으켰는데 이는 최충의 공로로 보고 최충을 ‘해동공자(海東孔子)’라고 칭해졌었다. 이 때에 최충공도와 뜻을 함께한 同志들이 나와서 私學을 크게 발흥시켰는데 11徒가 나왔다. 이를 모두 합쳐 이른바 ‘사학12공도(私學十二公徒)’라 한다. 그러나 중앙의 官學과 私學이 모두 무신란으로 부실해졌다. 주자학을 전래한 안향은 윤리부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충열왕은 교육혁신을 위하여 충렬왕(재위1274-1308)이 국자감을 국학으로 바꾸고 성균감으로 바꾸었다가 同王34년에는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유학의 진흥을 도모했다. 고려후기 유학은 주자학이 전래된 후부터인데 종래의 五經중심의 교육에서 四書중심의 교육이 강조된다. 사서(四書)를 판각하여 보급했던 권보(權溥1262-1346)의 효행록(孝行錄)을 사회교육으로 손꼽힌다. 요컨대 고려사에는 중앙에 관학으로서 『국자감』과 私學으로서 사학12도가 있었고 지방에는 官立향교와 私立향교가 병존했다. 도덕윤리가 강조된 유학교육이 전국적으로 확산 되었다. 모든 교육기관이 원천적으로는 형식상 공자의 仁孝교육으로 일관했다. 다음으로는 인격을 갖춘 전문지식인 양성으로 국가인력에 대비한 교육이었다. 그러나 불교의 폐단과 교육정책의 부실로 인하여 윤리가 지극히 문란하여 척불(斥佛)이 시대적 소명이었다. 이를 성리학으로 윤리회복이 시대의 시급한 과제이어서 조선조 건국의 명분이 되었다. 본 연구의 의도는 國運을 좌우하는 것이 교육이요 국가의 초석인 가정과 미래의 사회를 열어가는 열쇠가 도덕교육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Abstract

Korea used to study Confucius was built on the basis of the considerations behind the Three Kingdoms era. Consider the creation of a school in '13 and was called King Taejo Korean Studies. Seongjong in '11 that was equipped with a system of university Gukjagam. Seongjong was important to appoint Choi Seung-Ro. However, this study does not vigorous training was training in earnest since Injong. In Uijong until Wonjong was a downturn due to musinran(武臣亂). An Hyang jujahak was when Chungryeolwang by the nursery, where the Ethics has been emphasized from the study called for new electricity. Gukjagam is considered normal maintenance period since Injong have received this interdisciplinary Tang(唐). Professor Sir subjects 9(九 經), and in each of the 1 If "Hyogyeong(孝經)" and was a common prerequisite "Analects of Confucius". Because of our fellow countrymen ancestors Samsung Ancestor(三聖朝) the core is fundamentally a crane Confucius was a succession of Hyohak will comply with the principle that the "Hyogyeong" and "Analects of Confucius" at the Shilla Korean Studies as a common compulsory subjects. Succession in the considering it was the center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and "Hyogyeong". It opened this private school as Choe Chung is the Sasuk(私塾), the students were gathered from all over the country. The Institute has nine specialized courses are offered, he said ‘9jaehakdang’,‘mumhungongdo’. This causes the History of scholasticism consideration for about 300 years, named the "Korea Confucius' the Choe Chung. In this case suggests that the so-called 12 private schools. History of Central Gwanhak and both became insolvent in musinran. An Hyang who introduced the jujahak has contributed greatly to the revival ethics. Chungryeolwang has been a change in Gukjagam in Korean Studies, bacteria sense has renamed Sungkyunkwan in '34 and plan promotion of study abroad for education innovation. Latter was considering studying in four books in the center of five books-centered education. Record of filial piety Kwonbo(權溥-孝行錄) is the chief of the Social Education. In short, considering "Gukjagam" as Gwanhak the center, private schools was 12 numbers as history, the province has had coexisted with public and private Hyanggyo. The study highlighted Ethics education has spread throughout the country. All educational institutions were fundamentally consistent with the type of education Inhyo(仁孝) by the Confucius. However, due to the insolvency of evils and Buddhist ethics education policy was extremely disorderly. Ethics urgent restoration of this era was followed by the founding cause of the Joseon Dynasty. In short, education is influencing national destiny, is the key that opens the cornerstone of family and social future of the country is mor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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