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고려 초 울산지역 변동과 蔚州의 성립
A study on the transition of the Ancient and the early Goryeo period Ulsan rigion and establishment of Ul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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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삼국과 통일신라시대 울산지역 지방통치조직의 변천, 울산지역의 역할과 위상, 나말여초 울산지역 호족 朴允雄의 고려 歸附 배경과 蔚州의 성립에 대해 살핀 것이다. 신라는 530년대에 굴아화촌과 생서량촌을 郡治로 삼아 屈阿火郡, 生西良郡을 설치하고, 거기에 각기 栗浦村과 于火村을 예속시켰다. 신라는 신문왕대에 王京의 범위를 축소하고, 옛 왕경지역에 毛火郡 등을 설치하였는데, 이때 굴아화군을 縣으로 강등하여 율포현과 함께 모화군의 領縣으로 재편하였다. 삼국통일 이전에 울산시의 태화교 아래에 위치한 絲浦가 海上에서 신라 왕경을 연결하는 주요 關門港으로 기능하였다. 6세기 중반 이후에 党項津이 중국과 교통하는 관문항으로서 새롭게 부각되고, 게다가 통일 이후에 王京에서 양산을 거쳐 김해 또는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倭國으로 나아가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關門으로서의 울산지역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이에 대신하여 신라인들은 울산지역을 王畿地役이자, 신라 王京과 마찬가지로 佛國土로서의 위상을 지닌 곳으로 새롭게 인식하였다. 927년(경애왕 4)에 후백제가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박씨인 경애왕을 죽이고 金傅(경순왕)를 왕위에 앉힌 상황에서 930년 정월 고창전투 이후 고려가 후백제를 압도하게 되자, 이 해 9월에 皆知邊(울산)의 朴允雄이 고려에 歸附하였다. 박윤웅이 고려에 귀부함에 따라 고려는 慶州 이남의 군·현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지배 영역이 경주시 일원으로 국한된 신라를 사방에서 포위·압박할 수 있는 유리한 형세가 조성되었다. 이에 고려 태조는 박윤웅의 공로를 인정하여 河曲縣과 虞風縣, 東津縣을 합쳐 興禮府를 설치하였다. 이후 고려는 940년(태조 23)에 興禮府를 蔚州로 개칭하고, 여기에 東安郡을 合屬시켰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changes in the local governance organizations in the Ulsan region, the role and status of it during the Three Kingdoms and the Unified Silla period, and the background behind the surrender of an Ulsan Hojok Park Yunung to Goryeo and the establishment of Ulju from the Late Unified Silla Dynasty to the Early Goryeo Dynasty. In the 530s, Silla established Gulahwagun(屈阿火郡) and Saengseoryanggun(生西良郡), using Gulahwachon and Saengseoryangchon as the center places of Gun(郡), and respectively subordinated Yulpochon(栗浦村), Uhwachon(于火村) to them. Silla decreased the size of its capital during the reign of King Sinmun and established Mohwagun(毛火郡) in the former capital areas. Silla also simultaneously demoted Gulahwagun to Gulahwahyeon, and made it and Yulpohyeon the subjugated Hyeon of Mohwagun. Prior to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e Sapo(絲浦) located under the Taehwagyo Bridge in the Ulsan City served as the main gateway port(關門港) connecting the Silla Capital and the sea. After the unification, the role of the Ulsan region as a gateway decreased, as Danghangjin (党項津) newly had emerged as a gateway port for the exchange between Silla and China in the mid-sixth century, and as the number of people going to Japan by water via Yangsan from Gimhae or Geojedo had increased. Consequently, the Silla people started to recognize Ulsan region as the territory around the capital(王畿) and also as the land of Buddha(佛國土) like the capital of Silla. Therefore, in September 930, Park Yunung surrendered to Goryeo after the Later Baekje's attack to the capital of Silla which resulted in its killing of King Gyeongae whose last name was Park, and throning Kim Bu(King Gyeongsoon) in 927(the 4th year of King Gyeongae) and the Goryeo's overpowering of Later Baekje after the Battle of Gochang in January 930. Thanks to his surrender to Goryeo, Goryeo was able to secure a key military base and therefore was able to control the counties and prefectures south of Gyeongju. It created an advantageous situation for Goryeo as it could surround and pressure Silla from every direction since Silla was only controlling the Gyeongju area at that time. Therefore, the King Taejo of Goryeo merged Hagokhyeon(河曲縣), Upunghyeon (虞風縣), and Dongjinhyeon(東津縣) into Heungryeobu(興禮府) to give credit for Park Yunung’s contributions. In 940, Goryeo renamed Heongryeobu to Ulju(蔚州) and also subordinated Dongangun(東安郡)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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