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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울산의 역사 지리적 성격과 朴堤上

古代の蔚山の歷史地理的な性格と朴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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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三韓時期 울산지역에는 于尸山國과 屈阿火國이 존재하였다. 이들 小國은 3세기 후엽에서 4세기 전반의 어느 시기에 新羅에 복속되었다. 이후 울산지역은 신라의 관문이자 대외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유적인 울산 伴鷗洞遺蹟에서 보이는 거대한 木柵 시설은 그러한 울산지역의 역사 지리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廣開土王陵碑文에 의하면, 400년에 高句麗軍 5만은 신라의 수도 경주를 거쳐 도망가는 倭賊의 뒤를 쫓아 부산・김해지역까지 이르게 된다. 이 때 고구려군은 울산지역을 통과한 것으로 보았다. 울산지역의 지리적 여건과 유적(銀峴里積石塚) 및 출토 유물(太和13年銘石造佛像) 등을 통해서 그렇게 추정하였다. 왜적의 退路는 곧 침입로이기도 하여 울산지역은 왜적이 경주로 침입하는 주요한 루트 중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日本書紀』에 ‘汙禮斯伐(지금의 울산지역으로 비정)의 毛麻利叱智(堤上)’로 표기된 점으로 보아 제상은 5세기 초 당시의 울산인이었다. 울산 사람 제상이 인질 구출을 위해 고구려와 왜로 떠났던 것은 울산지역의 역사 지리적 특수성, 즉 대외 사정에 밝은 곳에서 얻은 경험 때문이었다. 고구려군이 울산지역을 그쳐감으로써 당시 울산 거주의 제상은 고구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울산지역은 왜의 신라 출입구이기도 하였다. 이에 왜에 대한 정보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5세기대 울산지역의 역사 지리적 성격은 이후에도 이어졌으며, 그 고고학적 증거가 반구동유적인 것이다. 특히 신라 외항으로서의 역할이 중시된 곳이 울산이었다.

Abstract

三韓時代の蔚山地域には于尸山國と屈阿火國が存在していた。これらの小國は3世紀後葉から4世紀前半のある時期に新羅に服屬された。それ以来蔚山地域は新羅の關門であり、對外貿易港として機能していた。統一新羅時代の遺蹟である蔚山伴鷗洞遺蹟で見られる巨大な木柵施設は蔚山地域の歷史地理的な性格を端的に物語るのである。廣開土王陵碑文によると、400年に5萬の高句麗軍は新羅の首都慶州を通り過ぎて逃げていく倭賊の後を追って釜山・金海地域まで至った。この時高句麗軍は蔚山地域を通過したと考えられる。蔚山地域の地理的な與件と遺蹟(銀峴里積石塚)および出土遺物(太和13年銘石造佛像) などから推定できるのである。倭賊の退路は直ちに侵入路でもあり、蔚山地域は倭賊が慶州に侵入する重要なルートの一つでもあった。『日本書紀』に‘汙禮斯伐(現在の蔚山地域に比定される)の毛麻利叱智(堤上)’と表記されていることから堤上は5世紀初、当時の蔚山人であった。蔚山の人堤上が人質の救出のために 高句麗と倭へ行ったのは蔚山地域の歷史地理的な特殊性,つまり對外情勢に詳しい地域から得た経験があったからである。高句麗軍が蔚山地域を通って行ったことによって当時蔚山に居住していた堤上は高句麗に関する情報を得ることが出来たのである。また、蔚山地域は倭の 対新羅出入口でもあった。よって彼は倭に関する情報も確保できたはずである。このような5世紀代の蔚山地域の歷史地理的な性格はその後も引き続いていき、その考古學的な證據が伴鷗洞遺蹟である。とりわけ新羅の外港としての役割が重視されたのが蔚山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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