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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경 6부의 경계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Boundaries of the Six Districts of Silla’s 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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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논문은 신라 왕경 6부의 위치와 범위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6부의 경계를 구체적으로 추정하고, 6부 구역과 왕도 및 대성군· 상성군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한 것이다. 6부 경계의 복원은 『삼국유사』의 고려 경주 6부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래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된 면 경계를 참고하였다. 한기부의 경우 대체로 동해안 방면에 비정되지만, 몇몇 사료에 의하면 일찍이 경주 시내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기존 부내면과 내동면의 경계가 주목되는데, 이것은 방을 구획하는 남북 방향 직선 도로로 이루어진 것으로 양부와 한기부 및 본피부의 경계를 형성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처럼 양부와 사량부, 본피부, 한기부, 습비부 등은 시내 부근에서 경계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며, 다만 모량부의 경우에는 서천 서쪽에 위치하여 경주 시내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을 것이다. 도시로서의 왕경, 즉 왕도는 5세기 말 6세기 초부터 양부와 사량부의 경계 부분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가지의 확대에 따라 양부의 대부분과 각 부의 일부는 도시 구역에 편입되어 里로 편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 부에는 리로 편제되지 않은 비도시 구역도 남아 있었는데, 「월성 해자 9호 목간」에 보이는 리가 아닌 지명은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왕도의 외곽, 즉 비도시 구역에는 대성군과 상성군이 설치되었는데, 이 두 군의 영역 역시 6부 구역을 고려하여 설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Abstract

Based on the theory that the location and scope of the six districts of Silla’s capital did not change much, this paper investigated the boundaries of them, and discuss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oyal city, Daeseong-gun, Sangseong-gun and them. The restoration of the six districts of Silla’s capital was based on the information about them of Goryeo’s Gyeongju in Samgukyusa, and also referenced the boundaries of myeon (面) subdivision which remained constant since the mid Joseon dynasty. In the case of Hangi-bu, it was usually said in the east coast, but according to some sources, the east of Gyeongju city was also its territory from the earlier period. In this regard, attention was paid to the boundary between the former Bunae-myeon and Naedong-myeon, which is a north-south road dividing square residence districts. This road can be regarded as a eastern boundary of Yang-bu. In this way, it is presumed that Yang-bu, Saryang-bu, Bonpi-bu, Hangi-bu, and Seupbi-bu had some territories in the city. However, in the case of Moryang-bu, it would be located in the west of Seocheon and slightly deviated from the city. It is presumed that the royal city formed from the boundary between Yang-bu and Saryang-bu in the late 5th century. As part of the expansion of the city, most of Yang-bu and parts of Saryang-bu, Bonpi-bu, Hangi-bu, and Seupbi-bu were incorporated into urban areas and organized as ri (里). However, in each district, there was also a non-urban area that was not organized as ri, which can be seen in No. 9 wooden slips from moat of Wolseong palace. On the other hand, Daeseong-gun and Sangseong-gun were established in the outskirts of the royal city, and the area seems to have been set considering the six distri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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