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元代 중·후기 대칸위 정쟁과 낭기야다이 - 四川 일대의 향배를 중심으로 -

Succession Disputes in the Mid to Late Period of the Yuan Dynasty and Nangγiyadai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은 元代 四川行省 平章이었던 낭기야다이(囊加台)의 世系와 정치적 활동을 통하여 元代 중후기 제위계승 분쟁 속 四川 일대의 동향에 대해 분석하였다. 致和 원년(1328) 泰定帝가 상도에서 사망한 후, 元의 두 수도인 上都와 大都에서는 최고 통치권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이 발발하였다. 소위 양도내전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전국 대부분의 행성이 참여하여 자신의 입장에 따라 향배를 달리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런데 四川行省은 양도내전이 한창일 무렵에는 미온적 반응을 보이다가 上都의 패배가 확정시 될 무렵 군사를 일으켜 大都의 文宗 톡테무르 정권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四川의 동향은 곧 平章 낭기야다이의 입장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낭기야다이 가문은 대몽골국 시기부터 군사적 성과를 바탕으로 사천 지역에 대대로 진수하였다. 사천 일대에서 오랜 활동으로 인해 이들 가문의 영향력은 사천뿐 아니라 섬서·운남·토번 등 인접 지역에도 미쳤다. 특히 낭기야다이의 숙부였던 예수데르(也速迭兒) 시기부터 그의 가문은 운남 일대까지 광범위한 군사 활동을 벌였고 이는 낭기야다이가 사천행성 평장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낭기야다이는 양도내전 발발 당시 大都와 上都 어느 측에게도 직접적으로 군사적 지지를 보내지 않다가 上都 측이 패배하자 군사를 일으켰다. 본고에서는 검토를 통해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낭기야다이는 대칸위 경쟁자 중 어느 한 쪽을 적극 지지할 정도의 친소관계가 없었을뿐더러, 인접한 행성이 모두 향배를 달리하였기에 섣불리 나서기보다는 자기 보전을 위해 양도내전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사태를 관망하였다. 그러나 낭기야다이는 이전에 운남에서 군사적 활동을 계기로 上都 측 주요 인물인 雲南王 옹샨(王禪)과 정치적 관계를 맺었던 점에서 대도의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내전 발발 이전 옹샨 및 그의 아들은 이미 북상하여 운남에 부재하였고 낭기야다이 역시 上都를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나, 文宗 톡 테무르는 옹샨과 관계 및 그가 가진 막강한 군사력을 견제하여 양도내전 중 낭기야다이를 제거하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大都 측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낭기야다이는 톡 테무르의 즉위 조서를 기반으로 明宗 코실라를 추대하였다. 그는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워 文宗 톡 테무르 정권에 반기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유리하게 바꾸고자 시도한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investigates the political activities of Nangγiyadai(囊加台), who held the position of Director of Political Affairs(Pingzhangzhengshi 平章政事) at the Branch Secretariat of Sichuan(Sichuan Xingsheng 四川行省) during the mid to late Yuan Dynasty succession disputes. Following the death of Yisün Temür(Tai’ding 泰定帝) Qa’an in 1328, a civil war known as the War of Two Capitals(兩都之戰) erupted between the forces based in the Yuan capital, Dadu(大都), and those based in the summer capital, Shangdu(上都). The notable aspect about Sichuan in the civil war is that while Nangyiyadai never had direct involvement in the event, soon Nangyiyadai chose to revolt shortly after Shangdu’s surrender. Nangγiyadai's family had risen to power during the war in Sichuan between the Mongol empire and the Song Dynasty. With this background, he was able to receive the traditional right of inheritance of the military force in Sichuan from his family. He engaged in military activities in Yünnan province and established political relations with Ongsan(王禪), a Shangdu loyalist during the War of Two Capitals. Although Nangγiyadai did not take any specific military actions during the war, the very presence of the military power he held put pressure on Tugh Temür(圖帖睦爾) who tried to succeed to the throne in Dadu. Initially, Nangγiyadai intended to keep a neutral position to preserve his position of authority and influence in Sichuan. However, Tugh Temür denounced Nangγiyadai throughout the civil war and even attempted to assassinate him. This hostile relationship caused Nangyiyadai to ultimately change his political stance. Thus, right after Shangdu surrendered, Nangγiyadai rebelled against Tugh Temür who had ascended the throne. He instead supported Tugh Temür's older brother, Qosilla(和世㻋).

참고문헌 (44)

  1. "元史", 中華書局 標點校勘本, ~
  2. 蘇天爵, "元朝名臣史略" (1996), 中華書局
  3. 虞集, "虞集全集" (2007), 天津古籍出版社
  4. 蘇天爵, "滋溪文稿" (1997), 中華書局
  5. 宋濂, "芝園後集" (2014), 人民文學出版社
  6. 유원수, "몽골비사" (2004), 사계절
  7. 김호동, "집사3: 칸의 후예들" (2005), 사계절
  8. 杉山正明, "몽골세계제국" (1999), 신서원
  9. 方鐵, "西南通史" (2003), 中州古籍出版社
  10. 方慧, "大理總管段氏世次年歷及其與蒙元政權關係硏究" (2001), 雲南敎育出版社
  11. 史衛民, "元代軍事制度史" (1998), 軍事科學出版社
  12. 王頲, "龍庭崇汗—元代政治史研究" (2002), 南方出版社
  13. 楊志玖, "元史三論" (1985), 人民出版社
  14. 李治安, "元代分封制度研究" (1992), 天津古籍出版社
  15. 李治安, "元代行省制度 上·下" (2011), 中華書局
  16. 陳得芝, "中國通史 13" (1997), 上海人民出版社
  17. 陳世松, "中國封建王朝興亡史·元朝卷" (1996), 廣西人民出版社
  18. 陳世松, "宋元戰爭史" (1988), 四川省社會科學院出版社
  19. 漢儒林, "元朝史" (1986), 人民出版社
  20. 권용철, "元代 중·후기 權臣 정치 연구", 박사, pp.2017
  21. 金浩東, "칭기스 칸의 子弟分封에 대한 再檢討―『集史』 <千戶一覽>의 分析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연구, 9, pp.29~65 (2004), 중앙아시아학회
  22. 이근명, "남송말 몽고군의 남하와 양양(襄陽)·번성(樊城)의 전투", 역사문화연구, 17 (2002), 한국외국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3. 최윤정, "元代 兩都內戰(1328)과 동북지역 —요양행성과 동도제왕 세력의 향배 및 세력 浮沈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논총, (46), pp.119~149 (2014), 동북아역사재단
  24. 郭曉航, "元明時期雲南的出鎮藩王與鎮守中官", 博士, pp.2009
  25. 鈕希强, "元朝兩都之戰硏究", 碩士, pp.2010
  26. 方齡貴, "西南古籍硏究" (1989), 雲南人民出版社
  27. 裴一璞, "宋蒙涪州藺市之戰", 長江文明, 7 (2011)
  28. 蕭功秦, "元史論叢 2" (1983), 中華書局
  29. 安京, "蒙古國早期的水軍與水戰", 中國邊疆史地硏究, 22 (2001)
  30. 敖長軍, "元代西南世家紐璘家族研究", 碩士, pp.2018
  31. 王玉朋, "元朝西南地區軍事機構的設置及兵力的布置", 貴州文史叢刊, 2 (2011)
  32. 李治安, "元史論叢 4" (1992), 中華書局
  33. 李治安, "元陝西四川蒙古軍都萬戶府", 歷史硏究, 1 (2010)
  34. 張金銑, "元史論叢 10" (2005), 中國廣播電視出版社
  35. 張金銑, "元兩都之戰及其社會影響", 安徽大學學報, 5 (2006)
  36. 張金銑, "元朝兩都之戰與各地反文宗政權的叛亂", 碩士, pp.2014
  37. 曹金成, "元代四川行省平章囊加台生平事迹考", 內蒙古大學學報 (2017)
  38. 陳得芝, "蒙古史研究" (2000), 內蒙古人民出版社
  39. 秦新林, "元英宗的革新與“南坡之变”", 安陽師專學報, 4 (1983)
  40. 馮承鈞, "馮承鈞西北史地論集" (1933), 中國國際廣播出版社
  41. 松田孝一, "チャガタイ家千戸の陝西南部駐屯軍団(上)", 國際研究論叢, 5(2) (1992), 大阪國際大學
  42. 松田孝一, "チャガタイ家千戸の陜西南部駐屯軍団(下)", 国際研究論叢, 5(3・4) (1993), 大阪國際大學
  43. 松田孝一, "河南淮北蒙古軍都万戸府考", 東洋學報, 68(3·4) (1987)
  44. 牛根靖裕, "モンゴル統治下の四川における駐屯軍", 立命館文學, 619 (2010)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