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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이후 대일무역의 변화와 節目의 제정

The Changing Pattern of Trade with Japan and Enactment of Detailed Regulation since Mid-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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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조선후기 대일무역은 공무역, 사무역[개시무역], 밀무역으로 구분된다. 이 중 개시무역은 18세기 중엽까지 청과 일본 사이에서 생사·비단과 은을 교역하는 중개무역, 인삼과 은의 교역으로 발전하였다. 18세기 중엽 이후는 대일 무역이 전체적으로 쇠퇴하는 상황이었다. 감소하는 무역 이익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공무역, 개시무역에서 모두 나타났다. 특히 공무역에서는 대표적인 물품인 쌀의 운영을 매개로 이익을 창출하는 움직임이 많이 나타났다. 경상도 각지에서 운반되어 온 公作米를 왜관에 定時에 지급하지 않고 불법 유출하여 고리대 자금으로 삼았다. 또한 定量 지급하지 않고 手標米 운영 등을 통해 차액을 거두기도 하였다. 이익금은 관청 재정에 충당하거나 사적 이익으로 창출되었다. 이러한 운영방식은 왜관에 공작미를 운반하는 과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공작미를 하납하는 경상도 각 지역에서도 공작미를 동래로 보내기 전에 자금화하는 시도가 있었다. 왜관에 체류하는 館守倭, 差倭 등에게 지급하는 倭料米도 이와 같은 운영방식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공작미나 왜료미와 같은 倭供米를 이익 창출의 자금으로 삼는 행위를 근절하고 왜공미의 지급을 담당하는 조선인 色吏, 屬官들에 대한 처벌 규정을 밝힌 것이 1750년 東萊接倭節目과 1789년 接倭節目이다. 18세기 중엽 이후 무역 변화 양상과 조선의 대응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Abstract

The trade with Japan in the late Chosun Dynasty is classified into public trade, private trade(open market trade), and smuggling. Of these trades, the open market trade had developed into merchant trade, which traded silks(thread) and silver between Ching and Japan, and into the trade of jinseng and silver until the mid-18th century. Since mid-18th century, the trade with Japan had declined overall. The efforts to recover declining trade profit were made both in public trade and open market trade. Especially in public trade, movements to create profits by intermediating the operation of rice, which was a representative item, appeared frequently. Profits were made by not paying for Gongjakmi(公作米) delivered from every parts of Gyeongsang-do(慶尙道) on time and operating Supyomi(手標米). The money made through this type of operation was used to cover the financial need of the government office or was created as a private profit. This type of operation not only happened in the process of delivering Gongjakmi to Waegwan(倭館), but some attempts were made to cash out the Gongjakmi before sending it to Dongrae(東萊) from each part of Gyeongsang-do. It was also a common practice to operate Waeryomi(倭料米), which was given to the Japanese people stayed in Waegwan, in a similar way. To eradicate the activities of creating money using various rices, which were given to the Japanese people, including Gongjakmi or Waeryomi, Dongrae Jeobwae Detailed Regulation(東萊接倭節目) and Waejeol Detailed Regulation(接倭節目) were set in 1750 and 1789, respectively, which stipulated the punishment of lower level officials in Chosun who were in charge of rice distribution. It recorded in detail the changing pattern of trade after mid-18th century and the responses of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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