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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 박세채의 「소학문답」을 통해 살펴본 17세기 『소학』 연구의 쟁점과 의의

Argumentation and Significance of Sohak study observed in Nam-Gye Park, Se-Chae's, Questions and Answers on So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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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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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남계 박세채의 「소학문답」을 경학적 입장에서 ‘소학학’이라는 하나의 학문 체계 속에 수렴하여 살펴 17세기 당대까지 『소학』 학문의 중요한 성과를 개괄하여, 17세기 소학학의 대체적인 규모와 범위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통해 박세채와 그 문도들의 『소학』 논의가 18세기 이후 학파 학맥별로 『소학』 연구가 일정한 경향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진전된 논의였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박세채의 『소학』 논의는 두 가지 관점에서 17세기 『소학』의 학문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첫째, 박세채는 『소학』을 四書와 동일한 지위에서 논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소학』에 대한 의의를 천명한 「소학총론」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정자와 주자, 장자의 말을 토대로 『소학』의 학문 성격을 밝혀 「개정소학총론」으로 그 체계를 새로이 정비하였다. 이러한 편성은 『소학』의 학문 목표와 『대학』의 학문 목표가 성학의 요체인 ‘敬’에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줌으로써 주자의 중요한 저술인 『소학』이 성학의 학문으로 경전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고 논의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개정소학총론」이 일제시대에 『소학』 공부의 입론서의 의미를 가지고 단독 출판된 것은 『소학』이 성리학의 중요한 분과임을 재천명한 「개정소학총론」의 의의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소학』의 학문체계를 논한 중요한 논거임을 입증한 것이다. 둘째, 박세채의 「소학문답」은 퇴계의 「소학도」에 대한 논설을 비롯하여 『소학집주』, 그리고 중국 五家의 『소학』주석서에 대한 변론, 『소학언해』본 주석과의 비교 검토, 『소학』의 분절체계에 대한 논의, 김장생을 비롯한 동국 제현의 설이 그 안에 채록되어 있다. 『소학』의 체계와 내용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소학』의 본질을 경학적 입장에서 이해한 것으로 당대 소학학의 쟁점과 그 규모를 밝혀 낼 수 있는 중요한 견해이다. 이러한 성과의 축적은 18세기 이후 소학학이 더욱 정치하게 변모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박세채가 『소학』을 경서에 준하는 책으로 인식하여 경전 해석과 같은 방법으로 『소학』을 논의하면서 17세기 『소학』의 중요한 단서를 열어둔 논거를 중심으로 17세기 『소학』에 대한 대체적인 규모와 논점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7세기 『소학』 주석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논의는 『소학집주』와 五家의 주석의 착오를 바로 잡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소학』 주석에 대한 정치한 연구는 자구를 고증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벗어나 『소학』 본문과 원전 본문 주석과의 이견을 점검하면서 경전의 주석을 비판하는 단계로 발전 심화되었다. 한편으로 경전의 주석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자의 경전 주석을 본지로 간주하여 기존 주석을 비판하고, 『소학』의 주석을 주자의 주석으로 본지를 삼아 해석하면서 주자의 본지를 강화하려는 일련의 경향으로 발전되었다. 이는 주자의 저술로서의 『소학』의 권위를 높이려는 논조와 『소학』이 조선후기 당대 사회의 행위의 표준이었기 때문에 『소학』 연구의 선본인 『소학집주』를 온전한 책으로 만들어 『소학』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논의가 『소학』 주석 연구가 더욱 정밀하게 논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겠다. 둘째, 『소학』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에 대한 필요성은 『소학』 본문 속의 기물과 제도에 대한 검토로 이어졌다. 이에 『소학』 본문에 수록된 기물과 제도를 검증하기 위해 중국의 제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증해 나가면서 중국의 주석가들 사이에서도 설명이 상충되는 것을 바로잡았다. 이를 통해 본문의 착오를 지적하고 검증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러한 명물제도에 대한 검토는 이후 『소학』 본문의 제도를 모범적인 사례로 제시하려는 시도에서 그 합당성 찾는 논의와 일정한 상관관계에서 더욱 정밀하게 논의되었다. 셋째, 『소학』의 내용을 다른 경서와 같이 분장 분절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논의로, 「소학집주총목」 속에 수록된 중국학자 李成의 분장분절체계에 대한 적합성과 당위성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소학』의 분장 분절체계에 대한 이해는 조목의 분속에 따른 분절의 명칭을 달리 두고 분절 개념을 새로이 세우면서 쟁점이 되었던 문제의 내용이 일정 정도 밝혀졌다. 특히 박세채를 중심으로 편장의 조목을 의리에 중점에 두고 분석하면서 편장을 달리하는 시도가 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학파를 달리하는 신후담의 「소학차의」, 유휘문의 『소학장구』, 유중교의 「소학설」에서 『소학』을 분절로 이해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조선에서 독자적인 『소학』의 분절체계가 완비되는데 그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상과 같이 박세채와 그 문도들의 『소학』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통해 살펴본 17세기 소학학은 주석의 재검토 및 『소학』 본문 내용의 적확한 해석, 그리고 『소학』의 편제 등과 관련하여 『소학』 본질에 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소학』에 대한 학술 논의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17세기 소학학은 『소학』이 성리학의 중요한 경전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고 『소학』 주석과 경전 주석의 정합성 및 명물제도에 대한 명확한 고증, 나아가 『소학』의 편장체계에 대한 의리를 쟁점으로 논의가 확대되는 그 진전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used Nam-Gye Park and Se-Chae's Sohak questions and answers book and A revised general sohak as important texts. In the 17th century, I would like to review the important achievements of Sohak and discuss the significance of the sohak study. Through this, Park and Se-Chae's understand Sohak. Sohak's various issues in the Sohak questions and answers book were discussed in an academic way that understood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This explains the foundation of the so-called 'Sohakhak(소학학)' academic category that examined the nature of Sohak. Through these studies, the following results were obtained First, as Sohakjegachipju was completed, the overall review of the Sohak annotation was made while comparing the annotations of Sohakeonhae and the annotation books of Sohak in China. Second, Park, Se-Chae's advocated the significance of respecting Zhuxi's sohak compilation. However, there is a tendency of the series of a tendency to critically examine the annotation of scholars based on the logical consistency of Sohak 's textual content system. Third, understanding of Sohak of Park and Se-Chae's did not acknowledge the fact that Sohak's division system of chapters and paragraphs did not recognize Zhuxi's as a division system of chapters, but he stated that he had certain significance. As discussed above, the academic discussion of Sohak in the 17th century is a discussion of the essence of the sohak book. And it is Park, Se-Chae's Sohak questions and answers book that can confirm these achievements. The answers in the dialogue and his views on Sohak can be confirmed as the results of the sohak research in the 17th century. The views of Park, Se-Chae's and his disciples are reflected in the various Sohak scholarship issues, especially since the 18th century. This confirms that the achievement is the result of discussing the academic and cultural significance of the sohak scholarship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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