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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조선 문인들의 北京 인식과 기록 양상-탐방 공간의 확장과 관련하여-

The Recognition of Beijing of Joseon Literary men and Aspects of their record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In relation to expansion of exploration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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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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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8~19세기 조선 사절단이 북경에 체류하는 동안 탐방한 공간이 확장된 사실에 주목하여, 탐방 공간이 조선 문인의 북경 인문지리 이해와 기록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밝히고자 하였다. 이에 연행록을 대상으로 삼아 북경을 皇城, 內城, 外城으로 구분하여 탐방 공간의 시대별 변화상을 분석하였다. 17세기 말부터 門禁이 점차 완화되면서 공식 일정 외에 황성의 太液池(北海), 내성 동북쪽의 國子監과 雍和宮, 그리고 宣武門 안 천주당(南堂) 방문이 가능해졌다. 18세기 초반 金昌業(1712년 동지사행)이 북경 현지에서 『大興縣志』를 참고하여 외성 동남쪽의 金魚池, 藥王廟, 法藏寺까지 탐방했고, 李器之(1720년 진하사행)가 『宛平縣志』를 참고하여 외성 서북쪽 밖의 天寧寺와 白雲觀까지 탐방했다. 이후 법장사와 천녕사는 조선 사절단의 보편적인 탐방 공간이 되었다. 18세기 중반 李義鳳(1760년 동지사행)이 내성 서북쪽 외곽의 圓明園, 西山(萬壽山), 玉泉山, 香山까지 두루 탐방했으며, 洪大容(1765년 동지사행) 역시 원명원과 서산을 개인적으로 탐방했다. 다만 원명원과 서산은 1780년대 이전까지 접근이 제한된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이의봉과 홍대용의 탐방은 이례적인 경우이다.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조선 사신의 의례 참여 및 인적 교류의 확대가 탐방 공간 확장에 영향을 끼쳤다. 1782년 정월 上元宴에 참석하면서부터 원명원과 서산을 공식적으로 유람하였고, 紫光閣 歲初宴과 瀛臺 氷戱宴에 잇달아 참석하게 되면서 太液池의 中‧南海 구역까지 탐방하였다. 또한 중국 문사와의 교제를 위해 외성 서쪽, 일명 ‘宣南’(선무문 남쪽) 지역에서의 활동이 빈번해졌다. 한편, 19세기로 넘어오면 외성에서의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져 외성 동남쪽의 萬柳堂, 夕照寺, 神木廠 등이 새로운 탐방 공간으로 정착했으며, 외성 서남쪽 밖에 위치한 盧溝橋까지 탐방하였다. 아울러 19세기 중반 이후로 향산의 碧雲寺가 새로운 유람 명소로 부상하였다. 논의를 통해 18~19세기 조선 사절단이 체험한 북경의 공간들을 더욱 깊이 이해함으로써 연행 기록의 변모 양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focuses on the fact that the exploration space of Joseon Literary men was expanded during their visit in Beijing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and is going to clarify how the exploration space affected on their understanding of human geography and aspects of their record. Accordingly based on Yonhaengrok, this paper analyzed the change of the exploration space in Bejing, divided into Huangcheng(皇城), Neicheng(內城) and Waicheng(外城). From the end of the 17th century, it became possible to visit Taiyechi(太液池) in Huangcheng, Guozijian(國子監) and Yonghegong(雍和宮) of northeastern of Neicheng and Catholic churches in Xianwumen(宣武門), in addition to official visit. In the early 18th century, Kim Changeop(金昌業) visited Jinyuchi(金魚池), Yaowangmiao(藥王廟) and Fazangsi(法藏寺), the southeastern of Waicheng with reference to Daxing Xianzhi(大興縣志), and Yi Giji(李器之) visited Tianningsi(天寧寺) and Baiyunguan(白雲觀), outside the west of Waicheng with reference to Wanping Xianzhi(宛平縣志). Later on, Fazangsi and Tianningsi became the universal visit space. In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Yi Uibong(李義鳳) visited all around to Yuanmingyuan(圓明園), Xishan(西山), Yuquanshan(玉泉山) and Xiangshan(香山), outside the northwestern of Waicheng, and Hong Daeyong(洪大容) also personally visited Yuanmingyuan and Xishan. However, as Yuanmingyuan and Xishan were restricted access spaces until the 1780s, visits of Yi Uibong and Hong Daeyong are the exceptional cases. In the late 18th century, the participation of rituals by Joseon Envoys and the expansion of interchanges between Joseon and Qing literati influenced the expansion of the visit space. From January of 1782, Yuanmingyuan and Xishan were officially visited, and in December 1784, the southern Taiyechi was also visited by the first participation banquet on the ice in Yingtai(瀛臺). In addition, for the purpose of comunication with Qing literati, activities were frequented in the west of the Waicheng, i.e. the southern Xianwumen. On the other hand, as the 19th century progressed, the range of activities on Waicheng was expanded, and the new visit spaces of Wanliutang(萬柳堂), Xizhaosi(夕照寺) and Shenmuchang(神木廠) on the southeastern of the Waicheng were settled as new exploration spaces. And Lugouqiao(盧溝橋), outside the southwestern of Waicheng was also visited. Additionally, Biyunsi(碧雲寺) of Xiangshan has emerged as a new visit space since the mid-19th century. Through the discussion, it intends to be help to figure out the time-based changes in Yonhaengrok by deeply understanding the Beijing spaces experienced by Joseon Envoy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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