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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광종ㆍ경종대 정치세력과 정국 운영에 관한 연구

The Political Forces and Operations of King Gwangjong and Gyeongjong Periods of Kory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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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고려 건국의 공훈을 세운 삼한공신 세력은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책봉되었기에 당시 고려의 정치 구조는 삼한공신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은 고려 초 왕위 계승 과정에서 희생되거나 노령으로사망함으로써 광종의 즉위 시점이 되면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러한 정치 지형을 바탕으로 광종은 여러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고, 쌍기(雙 冀)와 같은 한인(漢人)을 등용하고 과거제를 통해 새로운 인재들을 중앙관료로진입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을 지나치게 우대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했지만 이것이 곧 구신 세력과 신진 세력의 대립적인 양상으로 나타났던 것은아니었다. 광종 11년(970)에는 광종 치세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권신(權信)의 참소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후부터 광종은 참소를 믿어 많은 관료들을 죽이거나 폄출시켰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신 세력이 관료제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유학 소양을 갖춘 인재들을 등용하고자 했던 기조도 변하지 않았다. 경종은 선왕대의 참소 분위기를 일소하고자 집정제의 도입과 개편 그리고 전시과의 설행 등 제도적으로 노력했다. 또한 광종대 능력 있는 인사들을 배척하지 않고 등용했으며, 유교 소양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고 관료로 등용하고자 하는 선왕의 기조를 이어 갔다. 그러한 기조는 후왕인 성종대로 이어지며 고려 관료제 정비에 이바지했다.

Abstract

The Samhan Meritorious Subjects, who contributed to the founding of Koryŏ, were bestowed their titles across a wide range of individuals, thereby making it difficult for them to exercise power solely based on this recognition. Their influence weakened throughout the early succession struggles of the Koryŏ dynasty, particularly by the time of Gwangjong’s enthronement due to factors such as political strife and aging. Building on this shifting political topography, Gwangjong implemented various reforms, including the appointment of Han Chinese (漢人) such as Ssang Gi (雙冀) and the introduction of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which allowed new talents to enter the central bureaucracy. However, the excessive favoritism toward these newly appointed officials became problematic. The accusation from Gwon Shin (權信) in the 11th year of Gwangjong’s reign (970 ) marked a turning point, ultimately leading Gwangjong to trust false accusations and resulting in the execution or exile of many officials. Nonetheless, his fundamental policy of appointing individuals with Confucian qualifications was maintained. To eliminate the accusatory atmosphere of his predecessor’s reign, King Gyeongjong focused on institutional reforms such as the introduction of Jipjung (執政) and the Jeonsigwa (田柴科). At the same time, he maintained the policy of appointing capable individuals from Gwangjong’s era, thus continuing to cultivate and appoint officials with a foundation in Confucianism. This policy persisted into the reign of King Seongjong, thereby contributing to the further development and refinement of the Koryŏ bureaucratic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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