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광종대 유교적 정치이념과 崔行歸
高麗光宗代儒敎的政治理念と崔行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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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고려 광종대 최행귀의 「보현십종원왕가」 한역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고려 광종은 즉위한 뒤 문한기구의 변동과 문한관의 겸직을 통해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손소와 김악 등 신라 출신 유학지식인은 유교와 불교에 관심을 둔 광종을 태조와 비교하면서 왕실의 권위를 한껏 높였다. 그들은 구세·애민사상으로 시대의 난관을 타개하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불교를 숭앙한 태조의 군왕된 자질을 강조하였던 최언위의 정치이념과 사상을 계승하였다. 광종은 과거제를 실시하면서 더욱 많은 유학지식인을 문한직에 등용하였다. 김정언·이몽유·최행귀 등 신라 출신 유학지식인은 그들 가운데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쳤다. 김정언과 이몽유는 광종의 업적을 칭송하면서 신라를 유교적 이상에 충실한 군자의 나라로 표현하였고, 신라 경애왕이 유교적 정치이념의 구현에 충실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신라 출신 유학지식인은 광종의 왕권 전제화 노력을 애써 부각하면서 신라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세웠다. 최행귀는 「보현십종원왕가」를 한역하면서, 신라 고유의 시가인 향가의 우수성을 거론하며 신라의 전통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그는 최광윤, 최광원과 함께 최언위의 아들이었는데, 대체로 중국에 유학한 뒤 고려에 들어와 광종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최언위는 신라와 고려에서 왕명으로 여러 비명을 찬술하면서, 신라를 ‘본국’이라고 부르며 신라의 토착문화를 언급하거나 유교·불교·도교를 비교하여 삼교를 함께 이해하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자연히 최행귀도 신라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다. 최언위의 정치이념과 사상 경향은 같은 집안 출신이었던 최치원의 그것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때문에 최행귀 역시 최치원이 사용한 용어나 찬술한 저술에 유념하면서 「보현십종원왕가」의 한역에 신라 전통을 은근히 강조하였다. 광종의 왕권 전제화에는 최치원이 추구한 존왕적 정치이념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광종대에 신라 출신 지식인은 국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다만 왕권과 매우 밀접했던 최행귀의 가계는 광종 말에 왕권 전제화에 반발한 호족세력에 의해서 정국에서 배제되었다. 그러나 최행귀가 제시한 신라 전통의 강조는 비록 존왕적인 성격을 띠었지만 고유 문화의 계승을 강조한 것이어서, 호족의 지역적 기반을 인정하면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의 건설을 추구하였던 최승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Abstract
この文は高麗光宗代崔行帰の普賢十種願王歌の漢訳に盛られた政治的意味を察しようとしたのだ。高麗光宗は即位後に文翰機構の変動と文翰官の兼職を通じて王権を強化しようとした。孫紹と金楽(岳)など新羅出身儒学知識人は儒教と仏教に関心を置いた光宗を太祖王建と比較しながら、王室の権威を高めた。彼らは‘君王資質論’を強調した崔彦撝の政治理念と思想を継承した。光宗は科挙制を実施しながら多くの儒学知識人を文翰職に登用した。金廷彦․李夢游․崔行帰など 新羅出身儒学知識人は彼らの中で著しい活動を広げた。これらは光宗の業績を称誦しながら、新羅を 儒教的理想に充実な君子の国で表現したし、新羅国王が儒教的政治理念の具現に充実したことを強調した。新羅出身儒学知識人は光宗の王権専制化努力を浮刻しながら、新羅に対する肯定的評価を立てた。崔行帰は普賢十種願王歌を漢訳しながら、新羅固有の詩歌である郷歌の優秀性を挙論して、新羅の 伝統を特別に強調した。彼は崔彦撝の息子だったが、概して中国に留学した後高麗に入って来て、光宗の側近で活動した。崔彦撝は新羅と高麗で碑銘を撰述しながら、新羅を‘本国’と呼んで新羅の土着文化を言及するとか、儒教仏教道教を比較して三教を一緒に理解しようとする傾向を現わした。自然に崔行帰も新羅に対する肯定的である視覚を持った。崔彦撝の政治理念と思想傾向は同じ家出身だった崔致遠のそれをそのまま継承した。だから、崔行帰も崔致遠が使った用語や作った著述に留念しながら、新羅伝統を密かに強調した。光宗の王権専制化には崔致遠が追い求めた尊王的政治理念が影響を及ぼ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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