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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왕건의 운주전투와 긍준의 역할

The Battle of Unju led by King Wang Geon of Koryo dynasty and Geungjun’s R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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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에서 살펴본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략 10세기 이전에 충남 홍성읍을 중심으로 하는 해풍향이 있었는데, 이 곳이 고려 통일전쟁기에 운주(運州)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 곳이 접경지역으로서 중요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긍준(兢俊)이라는 강력한 지역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 운주성(運州城)의 성주(城主)이자 장군(將軍)인 긍준은 신라 말의 혼란기에 자립하고 있다가 궁예 휘하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918년 6월에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하자, 같은 해 8월에 후백제로 귀부하였다. 하지만 긍준은 927년 3월의 제1차 운주전투에서 왕건의 고려군에 패배하자, 이번에는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그런데 긍준은 왕건의 제12비인 흥복원부인의 아버지 홍규(洪規)와 동일 인물이었다. 그리고 운주성은 현 홍성읍내에 있는 홍주읍성의 모태였다. 셋째, 왕건은 928년 4월에 운주 옥산에 성(백월산성)을 쌓으라고 명을 내렸는데, 이후의 어느 시점에 운주는 후백제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왕건은 운주를 다시 탈환하기 위해 934년 9월에 정벌에 나섰다. 마침내 긍준의 협조 속에서 고려군 경기(勁騎)가 견훤의 후백제 갑사부대(甲士部隊)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것이 제2차 운주전투인데 이 전투에서 왕건이 승리하자, 웅진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로 투항하였다. 패배한 견훤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Abstract

This study i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before the tenth century, there had been a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so called "Haepoong Hyang" which was located in Hongseong-eup, Chungnam as its center. It emerged as the remarkable name of Unju during the war for unification waged by Wang Geon. Unju could gain held such an important place as a border region due thanks to Geungjun, a man of influence there. Second, Geungjun, as a general and castellan of Unju, had been independent during the turmoil toward the end of the Kingdom of Shilla before coming under the supervision of Gung Ye. But he subjugated himself to Hubaekjei in August 918 as Wang Geon had toppled Gung Ye and come to the throne in the June of 918. After defeated by Wang Geon’s Goryeo forces at the first Battle of Unju in March 927, however, Geungjun subjugated himself to Wang Geon. To our surprise, he was the same person as Honggyu, who was the father of queen of Heungbokwon, Wang Geon’s twelfth wife. And the Castle of Unju was the origin of Hongju Eup-Sung located in what is now Hongseong-eup. Third, in April 928, Wang Geon ordered to build up a the castle called Baekwol Fortress in Oksan, Unju. But sometime later, Unju became under Hubaekje’s control. Wang Geon embarked on a conquest into Unju in September 934. His cavalry, supported by Geungjun, won a great victory in the second Battle of Unju over Hubaekje’s armor-clad forces under Gyeon Hwon. Wang Geon’s victory here led to over 30 castles north of Woongjin surrendering to Goryeo. The defeat of Gyeon Hwon led to the downfall of Hu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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