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910년 文明論의 展開와 새로운 文明觀 摸索
The Development of Theory of Civilization and Search for New Directions from 1905 to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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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문명화를 조선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 설정했던 지식층에 을사조약의 체결은 큰 충격이었다. 그간의 문명화 작업이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명 달성을 위한 시도를 멈출 수는 없었다. 약육강식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문명에서 뒤처지는 것은 곧 멸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문명화 작업은 보다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본 자강론자들은 단체 결성을 통해 문명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한 분위기를 타고 대한자강회를 비롯한 많은 학회들이 결성되었으며 이들 단체를 중심으로 문명 담론이 전개되었다.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역시 많은 문명 관련 논설들을 게재하였다. 1900년대 후반 시기 문명론에는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나는 일제의 문명화 논리에 동조하여 일본의 지원을 용인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모습은 대한자강회에서도 일부 드러났고 대한자강회를 계승한 대한협회에서 본격화되었다. 다른 하나는 문명을 정신 문명과 물질 문명으로 구분한 후 서양 문명의 핵심을 물질 문명으로 설정하여 물질 문명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을 주장하는 경향이다. 두 경향 모두 문명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문명화 경향에 문제를 제기하고 문명화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는 움직임도 등장하였다. 그러한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일본 유학생들이었다. 이들은 新學家들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판하며 물질 중심적 문명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신 문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기존의 문명 개념을 반성하고 문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내에서도 신학가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문명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舊學의 장점인 도덕을 문명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한국 사회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줄기차게 문명화 작업을 추진하였다. 주로 부강과 동일시되었던 문명은 달성해야 할 분명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에 반해 추구하고 있는 문명화의 방향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문명화의 방향성을 놓고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진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Abstract
The intellectuals of Chosŏun, who set a goal of Chosŏn's civilization, sank into the deep shock of Eulsa Treaty as the treaty seemed to prove that the civilization works so far were fruitless. However, they could not stop their efforts for civilization in the country, believing that lagging behind in civilization would ultimately lead to total collapse in the accelerating competitions in the jungle-like world. The civilization works needed to be more organized and efficient. Claiming more strength for Korea, the Jagangron believers thought the civilization efforts should be promoted by forming new groups. Under such an atmosphere, many societies were formed and civilization discourse was developed vigorously. The Theory of Civilization in that period had two trends; one was to tolerate Japanese supports, agreeing with the logic of civilization presented by Japan, and the other was to take active interest in material civilization. Both the trends were the results of excessive obsession with civilization. On the other hand, there was a movement to raise questions with those trends of civilization and search for new directions in civilization. It was those Korean students studying in Japan that led the movement. Criticizing the double acts of people who stydy mordern studies(Shinhakgas : 新學家), they raised questions with material-centric Theory of Civilization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spiritual civilization. In Korea, there were criticisms about Shinhakgas and attempts to establish the concept of civilization anew. Korean society continuously implemented civilization works since the Gabo Reforms(甲午改革) of 1894. Being judged to have the same value as wealth and power, civilization was understood to possess the clear values to attain. However, there were few attempts to think about whether the directions of civilization were right or not. Thus it was considerably meaningful that there were serious thoughts about the directionality of civilization even though they came rather 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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