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洲 李震相과 그 學派 硏究의 現況과 展望
寒洲李震相及其學派硏究現況與展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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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은 19세기 영남 성주(星州)에서 줄곧 살며 학문을 탐구하다가, 30대 후반기에 들어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이진상은 학문적으로 사단칠정논(四端七情論)과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을 치밀하게 검토하면서, 그 논쟁의 문제점과 원인을 탐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주희(朱熹)의 사상을 시기별로 분류한 다음, 주자학의 본질이 그의 만년설(晩年說)에 있음을 간파(看破)하고 이를 토대로 논쟁이 되었던 성리사상을 심도 있게 분석하며 리(理)와 심(心)의 주재적(主宰的) 측면을 강조하여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체계화하였다. 이진상은 이러한 성리설에 입각하여 경학(經學)․역사학(歷史學)․역학(易學)․예학(禮學) 등을 연구하면서도, 선현의 저서에 대한 차의(箚義)를 통해 자신의 확고한 학문적 논지를 피력하였다. 이진상은 일찍이 아들 이승희(李承熙)에게 학문을 전수하기는 하였지만,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한 것은 30대 후반기부터이다. 그는 젊어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기보다는 성리사상 이론 구축에 치력하였다. 때문에 그의 나이 50대 이전까지는 문인들이 많지 않았다. 그의 학문이 무르익은 53세 이후, 많은 후학들은 그에게 나아가 성리학을 배우며 그가 중시한 심즉리설을 수용하면서 한주학파(寒洲學派)를 형성하게 되었다. 당시 인근의 타학파들이 심즉리설을 비판하자 한주학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옹호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현실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항일운동(抗日運動)을 전개하여 국권(國權)을 수호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의 대표적 문인은 아들 이승희를 필두로, 곽종석(郭鍾錫), 허유(許愈), 이정모(李正模), 이두훈(李斗勳), 윤주하(尹冑夏), 김진호(金鎭祜), 장석영(張錫英) 등을 들 수 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주문팔현(洲門八賢)’이라 일컫는다. 그의 재전제자들은 이병헌(李炳憲), 이인재(李寅梓), 김창숙(金昌淑), 장지연(張志淵), 하겸진(河謙鎭), 최익한(崔益翰), 김황(金榥)을 들 수 있다. 이들 역시 항일의지를 가지고 당시 핍박받고 있는 현실을 타개(打開)하고자 하였다. 본 논고는 이진상과 한주학파에 대한 연구의 현황과 전망을 위해, 먼저 이진상의 학문활동과 주요논저를 살펴본 다음, 한주학(寒洲學)에 대한 여러 연구업적들을 시기별로 구별하여 그 연구논문의 특성을 약술․소개한 것이다. 그리고 한주학을 계승한 한주학파, 즉 초전제자인 주문팔현과 재전제자에 대한 여러 연구논문을 살펴보아 그들의 사상을 점검해 보았으며 끝으로 한주학에 대한 연구 심화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Abstract
十九世紀, 李震相居住於嶺南星州郡并开始于學問的探究. 在理學上,他强調了理和心的主宰性,进一步确立了‘心卽理說’. 他立足理學后, 主要硏究體系为經學․歷史學․易學․禮學等, 通过比较先賢著書, 从而將箚義形式披露了自身學問的論旨. 李震相将此學問傳受於爱子李承熙, 自三十代後半期始传于弟子. 五十三歲後, 传敎于其他門人; 虽然形成了寒洲學派. 但受到周边其他學派对此'心卽理說'的批判. 寒洲學派对此積極地對應并擁護了其师說. 他們又爲克復現實的危機狀況而展開了抗日運動, 欲守國權. 他的代表門人始自李承熙, 扩展到郭鍾錫․許愈․李正模․李斗勳․尹冑夏․金鎭祜․張錫英等. 世人后稱为洲門八賢. 李震相的再傳弟子为李炳憲․李寅梓․金昌淑․張志淵․河謙鎭․崔益翰․金榥等. 他们亦以抗日意志欲打開了當時被逼迫人民的現實. 本論文是针对李震相及其學派硏究現況與展望进行了考察. 論文先次考察李震相的學問活動和主要論著, 然後以硏究時期为區分,對於寒洲學的論文进行了略述并介紹了論文的特性. 其次是對寒洲學派和再傳弟子的硏究論文的考察, 从而點檢了他們的思想. 最後爲對寒洲學的硏究深化而提案了數箇內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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