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효제(孝悌)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Filial Piety and Brotherly Love of King Sejong the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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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성군으로 칭송되는 세종대왕 李裪(1397〜1450)의 효도와 우애 모습에 대하여 왕자시절부터 재위 32년간을 대상으로 왕조실록에 근거하여 그 배경과 실제 및 의의 등의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인간존중의 사회를 추구한다면, 자식다운 태도로서의 부모 공경과 형제들 사이의 우애의식은 그 어느 것에 앞서는 최초의 덕목으로 중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덕 중시의 유교국가 건설을 이상으로 하던 조선 초기에 있어서는 왕자들 사이의 분란으로 인하여 그 기본 덕목인 孝悌의 실현조차 담보하기 어려웠다. 정치적 안정기에 접어든 태종 때에 이르러서는 세자 양녕대군의 비행이 계속되자 그는 ‘擇賢’의 명분으로 세자교체를 단행하여 3남 충녕대군 세종을 세자로 삼고 곧 즉위시켰으나, 그 과정에서는 왕실내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었다. 태종은 후대의 왕권 확립과 왕실의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처남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왕자들의 화목을 눈물로 강조했지만 그 앞날은 왕비의 세자교체 반대론에서 나타나듯이 평탄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부왕과 모후의 불화에 휩싸이거나, 두 형들의 섭섭함을 넘어 나타난 신하들의 끈질긴 배척운동에도 동요하지 않은 채, 그렇게 꼬이던 형국 속에서도 효도와 우애를 하나로 아우르는 도덕적 맥락을 견지하면서 왕실의 안정성과 유교정치문화의 기반을 확장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실제 상황을 다각적으로 고찰한 이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게 되었다. 첫째 세종은 일찍부터 왕자로서의 사명감 속에 ‘무엇이 도덕적으로 가장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충만했었다는 점, 둘째 왕실에서 효도와 우애의 길을 상실하면 곧 왕조의 앞날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었다는 점, 셋째 그의 효제 실천은 어떠한 상대적 이해논리의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기 관리로서의 영역의식을 넓히며 구성원들을 도와가는 선제적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효제의 양상은 도덕적 의미 구현에의 본질주의와 선구자적 교화의식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 등이다.
Abstract
This paper is King Sejong(Leedoo-李裪, 1397〜1450) of filial piety, brotherhood, and about having taken stock of it. Filial piety and virtue of close to the Joseon Dynasty, early due to relative difficulty of the Princes did not be practical. King Taejong was Prince Yangnyeong suddenly deposed the country in the 1418 years. And Choongnyung(忠寧-King Sejong's prince days name) great force of creating a new crown prince in his third son, he was. But the mother of Choongnyung was opposed to it. Nevertheless, the King Sejong did everything he could for his parents are indeed. He was politically to exclude an atmosphere where people overcame and respectful to protect the two of his brothers and lived until the end. Most importantly, they are brother and sister and brothers maintained a very good relationship with. These attitudes in Confucian culture of politics soon became engines for development. I checked with the following information in this study. First, King Sejong was early in the ‘What was most morally correct?’ considerate and so much for considering that in order to make good the effort. Second, he was the royal family and politics for stability of filial piety and brotherliness among them the value of the most treasured the fact that. Third, the morality of such, he was the need to reinforce the ability of no conflict, whilst constantly breaking up his pursuit of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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