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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西 金麟厚의 淳昌에서의 講學 활동 -訓蒙齋를 중심으로-

Haseo Kim In-hu’s Lecture Activity in Sunchang - Focused on Hunmongj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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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유교학

초록

장성(長城) 출신 하서 김인후(1510∼1560)는 순창의 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순창의 훈몽재는 김인후가 문인, 후학들을 교육하였던 유서 깊은 강학 공간이다. 1548년 무렵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이후 두 차례 더 중건되었지만 역시 소실되었다가 2009년에 다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훈몽재에 관한 기록은 매우 적다. 이 글에서는 드물게 전하는 기록을 토대로 김인후가 어떤 경로로 순창에 훈몽재를 짓고 강학 활동을 하였는지, 또 그 강학의 전통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고찰하였다. 훈몽재는 전후 세 차례에 걸쳐 건립되었으나 세워진 위치는 서로 다르다. 달라진 이유는 중건 당시의 사정에 따른 것이었다. 훈몽재의 강학 전통을 이어가는데 공로가 컸던 사람은 김인후의 후손 자연당(自然堂) 김시서(金時瑞: 1652∼1707)다. 김시서는 옛 훈몽재 부근에 ‘자연당’이라는 강학 공간을 짓고 김인후의 학문과 사상을 후대에 전하는 데 힘썼다. 또 김인후의 문집 출판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 유학사에서 김인후가 차지하는 위상을 자리매김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기초 작업 끝에 뒷날 정조 때 김인후가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순조 때 순창에 어암서원(魚巖書院)이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후에 김시서는 ‘소하서(小河西)’라 일컬어졌다.

Abstract

Haseo Kim In-hu(1510-1560) from Jangseong Korea made a great influence on the Confucianism in Sunchang Korea. Hunmongjae in Sunchang is a long-traditional lecture hall where Kim In-hu educated his followers. It was built in about 1548 but burnt down during the Imjin Japanese Invasion. Since then, it had been restored two times but vanished again. Then, it was re-built again in 2009 and remains so far. There are few records about it. Based on such few records, this article studies how he built Hunmongjae in Sunchang and lectured there; and how such lecture tradition of his has succeeded. Since Imjin Japanese Invasion, it had been built again three times at every different place. The reason why its location had been changed is because the social circumstance of the time when it was restored varied. It was Jayeondang Kim Si-seo(1652-1707), one of Kim In-hu’s descendants who made the biggest contribution to keeping the lecture tradition of Hunmongjae. Kim Si-seo built a lecture hall called Jayeondang nearby the old Hunmongjae to convey Kim In-hu’s learning and idea to the generations to come. In addition, Kim Si-seo did not only lead publishing of Kim In-hu’s works but also take the initiative in establishing Kim In-hu’s position in Joseon Confucianism history. With such big efforts of Kim Si-seo, Kim In-hu was canonized into a shrine of Confucius later during the regime of King Jeongjo, and Eo-am Seowon (lecture hall) was built in Sunchang during the regime of King Sunjo. Later, Kim Si-seo was hailed as So-Haseo(little Kim In-hu).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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