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朝鮮에서 朱子 『大学章句』에 대한 한 挑戦 - 盧守愼의 『大學集錄』을 中心으로 -

朝鮮における朱子『大学章句』に対する一挑戦 ― 盧守慎の 「大学集録」を中心として ―

1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철학

초록

이 논문은 穌齋 盧守愼(1515~1590)의, 從來 學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텍스트 『大學集錄』(69세(1583年)때 著作, 이하 『集錄』)을 통해서, 朝鮮에서 朱熹의 『大學章句』가 어떻게 挑戰 받고 있었던가를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盧守愼은 분명 韓國思想史를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주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羅欽順(整菴. 1465-1547)의 氣哲學, 王守仁(陽明. 1472-1528)의 陽明學을 중심으로 한 明代學術이 조선에 어떻게 受容되고 있었는가를 살피는 측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최근 盧守愼이 陽明學 受容의 측면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盧守愼의 「人心道心辨」 등 理氣心性論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盧守愼이 당시의 주자학파들과 문제의식을 매우 달리하고 있었던 사상가였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기 쉬웠다. 이러한 盧守愼의 독특한 사상가적 面貌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의 69세(1583年) 때 고향 尙州 化寧에 내려가서 編集한 『大學集錄』이다. 여기에는 ‘脫’朱子學的 陽明學的 사유가 뚜렷하고도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다. 아마도 조선시대사상사에서 이러한 특징적인 편집도 매우 드문 것으로 보인다. 盧守愼의 『集錄』 편집은, 『大學』에 관해 무조건적으로 朱熹․朱子學的 관점(朱熹의 『大學章句』의)만을 ‘尊崇․踏襲’하는 아니라, 당시 중국사상의 知形圖를 객관적으로 살피면서 그것을 참고로 ‘朝鮮’이라는 空間에서 그것(『대학』)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재정립(=이해․해석)해 가는가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例라 할 수 있다. ㄴㅌ集錄』 내용의 순서는 程顥(明道. 北宋) → 程頤(伊川. 北宋) → 黃震(慈溪. 南宋) → 蔡淸(虛齋. 明) → 王栢(魯齋. 南宋) → 王守仁(陽明. 明) → 都穆(字 玄敬. 明) → 權近(陽村. 朝鮮) → 李彦迪(晦齋. 朝鮮) → 盧守愼(穌齋. 朝鮮)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거론된 인물들의 글 내용에서 一貫된 것은 한 마디로 朱熹 『大學章句』의 기본틀을 흔드는 것들이다. 따라서 『集錄』은 본래 當時 朝鮮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朱熹의 『大學章句』에 대한 맹목적 태도를 객관적인 안목에서 되짚어보려는 움직임을 담은 것이며, 그 근저에는 反/脫朱子學的 - 陽明學的 관점이 깔려 있는 하나의 挑戰的인 編集物이다. ‘脫’朱子學的․陽明學的 사유가 뚜렷하고도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 노수신의 『大學集錄』은 이렇게 조선시대사상사에서 특징을 드러내는 텍스트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후 盧守愼의 『大學集錄』은, 朝鮮이라는 지역에서 『大學』에 대한 정보가 再集約 總結集되는 李端相의 『大學集覽』의 模本이 되기도 한다. 이 논문에서는 ‘中國思想史에서 『大學』, 『大學章句』란 텍스트의 성립’, ‘『大學集錄』의 內容 檢討’, ‘盧守愼의 『大學集錄』에 얽힌 문제 - 『大學章句』에 대한 挑戰과 應戰의 樣相’ 순서로 서술한다.

Abstract

この論文は、穌斎盧守慎(1515ー1590)の、従来学界によく知られていなかったテキスト「大学集録」(69歳(1583年)時著作、以下「集録」)を通じて、朝鮮で朱熹の『大学章句』がどのように挑戦を受けていたのかを調べるのにその目的がある. 盧守慎は明らかに韓国思想史を読みだすことができる一つの主要コードだといえる. 特に羅欽順(整菴、1465ー1547)の気哲学、王守仁(陽明.1472-1528)の陽明学を中心として一つの明代学術が朝鮮にどのように受容されていたかを探る面でも省くことのできない人物である. 今までの研究では盧守慎の「人心道心弁」等理気心性論中心であった. それで盧守慎が当時の朱子学派らと問題意識をとても別にしていた思想家であった点を私達は見過ごし易かったのである. このような盧守慎の独特な思想家的面貌を見せることが正に彼の69才(1583年)時故郷尚州化寧に帰って編集した「大学集録」である. ここには脱朱子学的、陽明学的思惟が明確で集約的に表れている. 恐らく朝鮮時代思想史でこのような特徴的な編集もとても珍しいと見られる. 盧守慎の 「集録」編集は、『大学』に関し、無条件的に朱熹․朱子学的観点(朱熹の『大学章句』の)だけを“尊崇․踏襲”するというのではなく、当時中国思想の知形図を客観的に探りながらそれを参考に’朝鮮’という空間で 『大学』をどのように主体的に再構築してゆくかを分かることができる主な例である. 「集録」内容の順序は<1. 程顥(顥、北宋)の「改正大学」 → 2. 程頤(伊川、北宋)の「改正大学」 → 3. 黄震(慈渓、南宋)の「黄氏日抄」․「読礼記」 → 4. 蔡清(虚斎、明)の「蒙引」(=「四書蒙引」) → 5. 『宋史』 「王栢傳」[→王栢(魯斎、南宋)] → 6. 王守仁(陽明、明)の「古大学」 → 7. 王守仁の「大学問」 → 8. 王守仁の「大学古本序」 → 9. 都穆(字 玄敬、明)の「庁雨紀談」の『大学』部分解説 → 10. 権近(陽村、朝鮮)の『入学図説』中「大学指掌之図」一部 → 11. 盧守慎(穌斎、朝鮮)の「晦斎[=李彦迪(晦斎、朝鮮)]先生大学補遺後跋>とされていた. ここの内容から分かるのは朱熹の『大学章句』の基本の枠を揺さぶるものである. 従って「集録」は本来当時の朝鮮で成り立っていた朱熹の 『大学章句』に対する盲目的な態度を客観的な見方で返り見ようとする動きを入れたことでその根底には反․脱朱子学的―陽明学的観点が敷かれている一つの挑戦的な編集物である. ところで、時期は不明であるが公式に刊行された「大学集録」は盧守慎の死後に順次程朱学的理念に硬直して行ったこのような学問的傾向と社会的雰囲気のために儒者の間に流通できなく、さらに盧守慎の文集編纂過程でも除外され、穌斎宗家だけで伝える秘書になってしまった. 本稿では<中国思想史で『大学』、『大学章句』欄テキストの成立>、<「大学集録」の内容検討>、<盧守慎の「大学集録」にまつわる問題―『大学章句』に対する挑戦と応戦の様相―>順序で叙述した.

참고문헌 (25)

  1. "澤堂先生別集"
  2. "宣祖修正實錄"
  3. "改正大學"
  4. "禮記"
  5. "朱子語類"
  6. "대학장구"
  7. "傳習"
  8. "退溪集"
  9. 李彦迪, "大學章句補遺․求仁錄․關西問答 合本" (1973), 亞細亞文化社
  10. 李彦迪, "大學章句補遺序", 穌齋先生文集 附錄 (1987), 穌齋先生文集刊行會
  11. 金光淳, "(盧守愼의)文學", 穌齋盧守愼硏究 (1990),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12. 盧瑞九, "編輯 뒤에 삼가 쓰다", 穌齋先生續集(全) (1991), 大譜社
  13. 도올(김용옥), "大學․學記 한글 譯註" (2009), 통나무
  14. 辛香林, "盧守愼 詩에 나타난 思想 硏究-朱子學에서 陽明學으로의 轉換-", 박사, pp.2005
  15. 辛香林, "16C 전반 陽明學의 전래와 수용에 관한 고찰", 退溪學報, 118, 퇴계학연구원
  16. 劉明鐘, "盧守愼의 氣哲學과 李朝儒學", 人文科學, 3,4 (1974), 성균관대학교
  17. 李源胤, "(穌齋先生續集)後識", 穌齋先生續集(全) (1991), 光山盧氏敬平公宗派宗親會,大邱:大譜社
  18. 趙誠乙, "蘇齊 盧守愼의 學問과 政治活動", 南冥學硏究, 3 (1993),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19. 趙昌烈,"晦齋의"大, "譯註에 관한 연구", 譯註 大學章句補遺․續大學或問 (2008), 한국학술정보(주)
  20. 趙駿河, "『大學章句補遺·求仁錄․關西問答 合本』解題", 大學章句補遺·求仁錄·關西問答 合本 (1973), 亞細亞文化社 刊行
  21. 최영성, "盧守愼", 韓國儒學思想史(朝鮮前期篇) (1995), 아세아문화사
  22. 崔在穆, "내 마음이 등불이다:왕양명의 삶과 사상" (2005), 이학사
  23. 武內義雄, "序", 學記·大學 (1943), 岩波書店
  24. 間野潜竜, "著者後記", 朱子と王陽明․新儒学と大学の理念 (1984), 清水書院
  25. 山下龍二, "まえがき", 大學·中庸 (1974), 集英社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