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寅普『陽明學演論』에 나타난 王龍溪 이해
Jeunginbo(鄭寅普)'s point of view on Wanglongxi(王龍溪) in Yangmyonghakyonron(陽明學演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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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근대 한국 양명학에서 王龍溪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문제를 爲堂 鄭寅普의 『陽明學演論』( 이하 『演論』)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鄭寅普의 『陽明學演論』이 近代日本陽明學의 영향을 받아, 박은식의 근대한국양명학의 정초와 최남선의 기획에 이어 그것을 완성하는 연구임을 밝히게 된다. 이어서 정인보의 양명 후학에 대한 평가는 우선, 왕용계(畿)와 왕심재(艮) 그리고 당시 양명학 내외로부터 비난을 듣고 있던 顔山農이건 何心隱 같은 인물들에 대해서 모두 그들이 「진실된 학문을 한 사람」이라고 하는 등 王學左派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黃宗羲의 陽明學 左派 평가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어서, 또 하나의 특징은, 황종희와 마찬가지로, 흔히 ‘유교의 이단아’ ‘유교의 반역자’로 불리는 이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좀 더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가 전서산의 편지를 통해「평범한 듯하지만 실질적인 공효(功效)가 있는 것」과 「아주 오묘한 듯하지만 아무런 내용도 없는 것과의 경계를 분명하게 깨닫게 한 말」이라고 적극 평가한데서 알 수 있듯이 청년대중들의 사적인 욕망긍정 보다도 ‘착실한 공부’ 쪽을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정인보가 양명학 좌파를 긍정적⋅적극적으로 읽어내고자 했던 것은 그가 양명학파의 ‘偉人傳記’를 모범으로 하여 당시 日帝 강점기하의 난감한 현실에 맞서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혁명적 영웅’의 출현을 靑年들에게 희망하고 또한 그러한 방향으로 계몽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하 정인보의 이러한 내밀한 작업이 黃宗羲의『明儒學案』에, 보다 구체적으로는 ‘양명학’에 의탁되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1933년에 『東亞日報』에 66回에 걸친 게재가 이미 말해주듯이 저널리즘에 의탁한 청년 내지 국민 계몽의 차원에서 양명학이 기획되고, 활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 박은식-최남선 등과 노선을 같이하는 근대일본양명학의 영향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정인보는 전서산과 왕용계의 학풍은 일치한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왕용계는 트이고 명석한 만큼 위를 향하는 체득(體得)의 경지를 주로 많이 말했고, 전서산은 깊고 굳은 만큼 실제적인 일이나 실물과 같이 절실하고 가까운 데 있는 것에 대한 공부를 주로 많이 말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의 저면에는 정인보가 저널리즘을 통해 양명학을 구축하고자 한, 일본에서 발원한 근대양명학을 한국적으로 다시 領有(appropriation)하고자 했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양명학 영위의 독자성도 보인다. 다시 말해서, 박은식이 보여준 『王陽明先生實記』가, 정인보에 이르러 전서산, 왕용계 등의 「陽明門徒 及 繼起한 諸賢」으로 확대, 완성된 것은 근대한국양명학이 일본의 그것을 모방하면서 어렵게 독자적으로 당도했던 ‘근대한국양명학의 완성’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Abstract
本發表文主要以鄭寅普(1892∼1950 拉北)的『陽明學演論』(以下简称『演論』)为中心,考察近代在韓國陽明學史上反映的王龍溪理解的一例。在这考察中,鄭寅普的『演論』是在韓國陽明學史上一份必不可少的资料。 鄭寅普断定韩国过去数百年间只尊崇朱子學, 因此表现出‘尊華派’的面貌,而且陷入了假行和虛學中。所以他主张實心和實行。他在陽明學中发现了那种精神。这种观点与玄相允在「陽明學和日本思想界」中所指出的「从日本人的国民性来看,他们具有比理論更重视实践的特长。由于这种原因日本人比朱子學更加欢迎王陽明學說」这句论调有相似之处。所不同的地方只是日本人所作的那样韩国人根据自己独立的方式确保了主体性,即「照實心判断是非」。总之,这一点与近代日本陽明學家所做的那样通过了陽明學。 从近代韓國陽明學史上看, 朴殷植的「王陽明先生實記」属于初期, 崔南善的『少年』誌陽明學及近代日本陽明學的介绍属于萌芽期、企劃期, 另外在这里要考察的鄭寅普的『演論』属于完成期。贯穿整个时期的中心内容就是偉人傳記。主要原因是把那些偉人作榜样,是为了对付韩国当时面临的在日帝治下的困难的现实, 并能克服困难的革命英雄的出现寄托在靑少年身上,也为了启蒙他们而引起的。 『演論』中鄭寅普的特点之一就是对王畿和王艮,以及当时从内外受到阳明学谴责的顔鈞或何心隱等人,都评价为「追求真正学问的人」,对王學左派作了如此肯定的评价。对黃宗羲的明儒學案卷33的王學左派的评价与「泰州學案」小序的主张不同。可以认为鄭寅普以积极的态度去学习阳明学左派的精神,其目的在于能够启发对付日帝的革命分子。只是让人感到有趣的是并没有具体地谈论被称为儒教的異端兒李卓吾。 鄭寅普积极地去学习杨明学左派的思想, 目的在于把那些陽明學派偉人作榜样,对付在日帝统治下的困难的现实, 并克服这种困难的革命英雄的出现寄托在青少年身上,并启发他们而介绍和评价了陽明門徒。 黃宗羲的『明儒學案』是一部实现这种目的很好的材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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