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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기록을 통해 본 검무의 계승양상

A Study on the Record and Transmission of Kŏmmu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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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음악학

초록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검무가 어떻게 계승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1910년대는 조합이나 권번에 소속된 기생이 검무를 기예로 갖고 있는 자가 경우가 많았다. 1913년 9월에 고종의 62세 생신잔치를 기록한 『조선아악』은 덕수궁 돈덕전에서 공연된 검무는 조선 후기의 궁중 정재를 계승하였음을 확인했다. 검무 정재를 공연하는 주체인 여령은 비록 광교기생조합 출신이었지만, 검무 정재의 관객이 고종을 비롯한 왕실이었고, 공연의 시간적 배경이 고종의 생신이라는 점, 공연 공간이 덕수궁 궁궐이라는 점, 검무의 교습을 왕실음악기관에서 관할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조선미인보감』에는 전국 권번과 조합에 소속된 605명의 기생들의 정보가 망라되었는데, 검무를 자신의 기예로 내세운 기생은 93명이었으며 전국적으로 검무를 기예로 삼는 기생이 포진해 있었다. 특히 광주조합과 평양조합의 기생 전원이 검무를 기예로 갖고 있었다. 1920년대는 권번의 공연 종목에는 대부분 검무가 등장하였다. 다나베 히사오가 조선악무를 조사하고 남긴 『중국․조선음악조사기행』에서 검무는 조선을 대표하는 전통춤으로 꼽히고 있었다. 평양의 기생학교에서 핵심적으로 교육되던 춤이 검무였고, 검무의 공연 공간은 극장, 귀족의 별장 등 다양했다. 검무의 구성은 2인무․4인무․8인무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검무 무원이 다양하게 구성되었던 전통 그대로였다. 1930년대에는 평양기생학교의 검무 학습에 주목하였다. 평양기생학교에서는 조선의 기본춤을 검무와 승무로 인식하여 검무를 매우 중시하였다. 평양기생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여러 지역의 기생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검무가 전국적으로 계승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을 앞둔 1945년까지도 함화진이 설립한 조선가무단이 공연하는 춤종목에 검무가 빠지지 않았다. 즉 일제강점기에 검무는 조선의 전통성을 가진 춤으로 인식되었고, 활발히 공연되었다.

Abstract

The aim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performing process of Kŏmmu 劍舞 (sword dance), a court dance (chŏngjae 呈才) repertoire, from historical viewpoint. Therefore this study will focus on the change following the period, space of the performance, and dancers. The scope of time period for this research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the research objectives are based upon such literary sources as Chosŏn aak 『朝鮮雅樂』(Court Music of the Chosŏn Dynasty), Chosŏn miin pogam 『朝鮮美人寶鑑』(Handbook of Korean Kisaeng), modern newspaper, and magazine. Sword dance (Kŏmmu) was performed by female dancers known as kisaeng 妓生 (female entertainers)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1910-1945). After the female dancers belonged to the Royal Palace had been dissolved in 1908, than the dancers belonged to kisaeng chohap 妓生組合(Association of kisaen) called kwŏnbŏn 券番( kisaeng institution) and performed the kŏmmu. The performance places were various such as restaurant, playground, etc. Consequently met the spectator who is various. Kisaeng learned kŏmmu from the teacher in the Yiwangjik Aakbu李王職雅樂部(Royal Conservatory of the Yi Household). Until 1945, kŏmmu had been popular and represented traditional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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