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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를 통한 일제강점기 <장생보연지무> 연구: 『정재무도홀기』와 비교를 중심으로

A Study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Jangsaengboyeonjimu Documented in Mu-ui: Focusing on a Comparison with Jeongjaemudohol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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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무용

초록

궁중무용에 있어 일제강점기는 침체기면서도 조선시대와 현시대를 연결해 주는 시기이다. 이러한시기에 이왕직아악부는 미약하지만 궁중의 음악과 무용을 계승한 기관이었다. 그러나 이왕직아악부의궁중무용에 관한 공식적인 문헌은 전해지지 않고 간단히 작성한 기록물이나 개인 기록물들이 남아있을뿐이다. 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 <장생보연지무>가 여러 공연에서 추어지고, 궁중무용에서 중요한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 <장생보연지무>를 성경린 무의 와 계사년 『정재무도홀기』를비교 연구하여 일제강점기에 추어진 <장생보연지무>의 특징을 분석하고, 무의 의 사료적 가치와 무용사적 의의를 연구하였다. 무의 와 『정재무도홀기』 비교를 통해 알아본 일제강점기 <장생보연지무>의 특징은 첫째, 무원의복식은 오방색이며, 둘째, 창사는 간소화와 격하된 표현을 하였다. 셋째, 종결부에서 약간의 구성 차이는 있었다. 넷째, 춤사위는 9변 춤의 순서가 모두 같아 춤사위에 있어 큰 틀의 변화는 없었지만, 세부적인 춤사위에 있어 무의 에 춤사위가 추가되거나 자세히 기록된 춤사위가 있었다. 다섯째, 표기에 있어변화는 있었지만 대부분 같은 의미이거나 춤사위였다. 이러한 점은 이왕직아악부에서 조선시대의 궁중무용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음을 느낄 수 있는 면이다. 무의 의 사료적 가치와 무용사적 의의는 첫째, 성경린의 무의 는 홀기로서의 가치가 있다. 성경린무의 는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의 궁중무용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사료로, 조선시대의 홀기와 같은틀로 기록되어 홀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둘째, 무의 를 통해 이왕직아악부의 궁중무용 재현이가능하다. 일제강점기에는 궁중무용에 관한 공식적인 홀기나 문헌이 전해지지 않아 일제강점기의 궁중무용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무의 는 조선시대의 홀기와 같은 구성을 갖추고 있어 궁중무용의 구성과전개를 알 수 있고, 한문 서술 외에 한글로 춤사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궁중무용의 춤사위 재현에서중요한 사료이며 무용사적 의의가 있다. 앞으로 무의 를 지속적으로 연구한다면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에서 추어졌던 궁중무용 재현작업에 큰 사료가 될 것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significance of Mu-ui (舞義, ritual of dance) by Seong Gyeong-rin in dance history and its value as Holgi (笏記, scroll document). This study identifi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Jangsaengboyeonjimu (長生寶宴之舞, Dance of longevity) by comparing the record in Mu-ui to that in Jeongjaemudogholgi (呈才舞蹈笏記, scroll document of court dances). First, the costumes of dancers were five colors, and second, the song Changsha expresses simplification and degraded expression. Third, there was a slight difference in composition at the end. Fourth, in the dance, the order of the nine-sided dance was all the same, so there was no big change, but dance details were added to Mu-ui or little details were recorded. Fifth, there was a change in notation, but most of them had the same meaning or dancing. Those findings indicate that Mu-ui by Seong Gyeong-rin has the following values and significance in the dance history. First, it holds its value as a Holgi of Yiwangjikaakbu (李王 職雅樂部, the downgrated insitution of Jangakwon). Second, it offers information about the changes of court dance by Yiwangjikaakbu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Finally, it enables the reproduction of Yiwangjikaakbu’s court dance by Mu-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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