持寶珠如來像에 대한 硏究 - 南北朝∼唐代 持寶珠如來像의 成立과 展開를 中心으로
A Study On the Buddha is holding maṇ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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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 과제는 보주(寶珠)를 지물(持物)로 들고 있는 ‘지보주여래상(持寶珠如來像)’에 대한 것으로 이 상들에 대한 양상, 전개과정, 제작배경, 종교적 역할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경전에 근거하여 지물을 든 여래상으로는 약사여래상이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지보주여래상은 약사여래상과는 다르게 여원인(與願仁)을 결한 왼손의 손바닥에 보주를 조각하였으며, 여래상은 마치 보주를 신자(信者)들에게 보여 주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현존하는 상을 기준으로 지보주여래상의 양상을 파악해 보면 이 상은 양(梁), 북주(北周), 수(隋), 당대(唐代)에 이르기까지 제작되었으며, 지역적으로는 사천, 섬서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된다. 제작시기 및 제작지와의 상관성을 생각해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남조(南朝)의 양과 북조(北朝)인 북주에서 이 상들이 연속적으로 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과정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서위(西魏)는 양나라 왕족 사이에서 내흥이 일어나자 폐제(廢帝) 2년(553)사천성을 점령하고, 양의 무릉왕(武陵王)을 토벌하게 되었는데 서위를 계승한 북주도 서위에 이어 사천을 지배하게 되었다. 지보주여래상이 확인되는 만불사지(萬佛寺址)는 사천성의 중심지인 성도(成都)에 위치하고 있는데 성도를 지배하게 된 북주로 인해 사천지역은 남북조의 불교문화가 서로 융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성도와 장안 사이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 광원 황택사 석굴에서 제15호굴(북주), 제28호굴(초당)의 본존여래상이 지보주여래상으로 확인 된다는 것은 이러한 추론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지보주여래상의 왼손바닥에 조각된 보주를 바라보는 신자들은 일체의 소원을 들어주고, 일체의 번뇌를 없애주기를 기대하였거나 여래상이 현현(顯現)한 불세계(佛世界)를 체험하고,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열반에 들기를 기대했을 수도있다.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보주를 들고 있는 여래의 자세로부터 생각해 볼 때, 보주는 여래상과 신자 간의 종교심을 승화시키는 매개체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 졌다. 이상 지보주여래상에 대한 연구 과제를 살펴보았는데 본 연구가 이후 한국, 일본에서 확인되는 지물을 들고 있는 여래상의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Abstract
In this study, I named the Buddha statues holding an Cintāmaṇi (寶珠) in their hand the “Cintāmaṇi-holding Buddha Statues (持寶珠如來像)” and examined their figure types, production backgrounds and religious roles. Among the Buhhda statues holding an Cintāmaṇi, Bhaisajyaguru (Medicine Buddha) statue is most wellknown throughout the Buddhist scriptures, but, unlike such statues, the Cintāmaṇi-holding Buddha statues hold an Cintāmaṇi in their left hand lacking the symbolic blessing gesture of vara-mudra and pose as if they intend to show the Cintāmaṇi to the faithfuls. If I examine their figure types based on the existing statues, they turn out to have been extensively produced across the Liang (梁代), Beizhou (北周;Northern Zhou), Sui (隋) and Tang (唐) dynasties of China, particularly in the provinces of Sichuan (四川) and Shaanxi (陝西). What is most intriguing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ir production ages and locations is that the statues were successively made between the Liang Dynasty of the Southern Dynasties (南朝) and Beizhou of the Northern Dynasties (北周). I judge this developmental process is associated with the following historical facts. Following an internal strife among the royal families of the Liang Dynasty, Xiwei (Western Wei; 西魏) occupied the Sichuan Province in the second year of the Emperor Fèi Dì(553) to defeat the Prince of Wuling, and Beizhou also conquered Sichuan after Xiwei. One of the Cintāmaṇi-holding Buddha statues can be found in the site of The Ten Thousand Buddhas Monastery (萬佛寺) that is located in Chengdu (成都), a sub-provincial city of the Sichuan Province, and it can be easily assumed that Beizhou, which came to control Chengdu, interacted with the Buddhist culture of Liang. This assumption is strongly supported by fact that the Cintāmaṇi-holding Buddha statues were found in the Cave No.15 of Beizhou and the Cave No.28 of Tang in the Huangze Temple (Temple of Imperial Favour; Guangyuan City (廣元市) that is a major traffic point between Chengdu and Chang’an (長安). The faithfuls that looked at the Cintāmaṇi-holding Buddha statues at that time may have expected the Cintāmaṇi to grant all of their wishes and clear them of any worldly anguish, or let them experience the incarnation of the Buddha cosmos (佛世界) and Bodhicitta (菩提心; spontaneous wish to attain enlightenment) to ultimately enter nirvana. Judged from the statues' postures of holding the Cintāmaṇi as if they intend to show it to the faithfuls, the Cintāmaṇi must have played as a medium that sublimates the faithfulness between the Cintāmaṇi and the faithfuls. I wish this result of our examination of the Cintāmaṇi-holding Buddha Statues to contribute to the ongoing studies on such statutes being conducted in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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