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의 보수·복원 경위와 조성배경에 관한 검토
A Study on the Maintenance, Restoration and Composition Background of the Stone Buddha Triad in Gaetae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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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는 940년에 완공되었으며, 사찰 창건과 함께 조성된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남아있다. 고려 태조가 직접 「화엄법회소문」을 지어 법회를 열었고, 이후에 태조진전이 설치되어 오랫동안 큰 사세를 유지하였다. 사찰이 폐사된 이후 사지에 방치되었던 삼존상은 일제강점기에 수습되고 일부 보수되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 때 작성된 기록자료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공문서로 남아있다. 삼존상은 기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상들과는 신체비례, 수인의 형태, 세부 표현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선행연구를 통해 이런 특징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양식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 출처 혹은 조성배경을 설명해 주기에는 다소 부족하였다. 논고에서는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의 특징이 단순히 지방 양식의 표현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관여한 태조의 정치적 의도가 포함된 사례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특히, 통일신라 이전에 조성된 상들의 구성과 특징을 반영한 복고양식을 의도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Abstract
Gaetaesa Temple was completed in 940, and remains of the "Gaetaesa Stone Buddha Triad," which was created with the founding of the temple. Taejo of Goryeo held a Buddhist memorial service himself, and then Taejojinjeon Hall was established and maintained a large position for a long time. After the temple was destroyed, the stone statue of the Buddha was in the temple site. After that, it was restored and partially repair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the records written at this time remain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However, it was not enough to explain the origin and background of the statue. In the article, it was noted that Goryeo Taejo was directly involved in the creation of the "Gaetaesa Stone Buddha Triad." It was understood that the stone Buddha Triad included the political intention of Taejo rather than expressing the local style.In particular, in view of the composi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Buddhist statues built before the Unified Silla, it raised the possibility that Buddhist statues were made in retro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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