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보편적 질료-형상론 비판
Albert le Grand et sa critique de l’hylémorphisme universel
정현석
초록
보편적 질료-형상론은 1230년대 이후부터 1260년대 중반에 이르는 약 한세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이론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보에티우스와 같은 기독교 세계의 권위를 근거로 12세기 이후로 유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그 시대의 현실과 이에 따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결합시킴으로써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파리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들과 스콜라학자들의 사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었던 중세의 보편적 질료-형상론에 대해 13세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는 1246년에 집필한 『명제집 주해』으로부터 1260년대 말-70년대 초에 걸쳐 집필한 『신학대전』에 이르는 저작들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비판적 논의를 전개한다. 본 논문은 알베르투스가 보편적 질료-형상론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11세기 무슬림 제국 치하의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유대철학자 아비체브론(Avicebron)과 그의 저작 『생명의 원천』(Fons vitae)이라는 저자와 저작을 보편적 질료-형상론의 근본 원천으로 제시하는 논의를 그의 저작연대를 좇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일차적으로 알베르투스의 생애 내내 유지되고 있는 일관되고도 집요한 그의 공격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유럽세계의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던 그의 필생의 동기가 발현한 구체적인 예로서 밝히고자 한다. 이와 아울러 그가 아비체브론과 『생명의 원천』을 그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보편적 질료-형상론자들이 거론한 철학적/신학적 권위들로부터 보편적 질료-형상론을 유리시키고 고립시키는 데 활용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1230년 대 이후 기독교 세계의 권위를 업고 유럽의 정신세계를 장악했던 보편적 질료-형상론을 아리스토텔레스나 아베로에스와 같은 이교 철학에 입각한 자신의 입장으로 대체하려는 알베르투스의 철학적 야심과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