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영과 「구인회」
A Study of Lee Moo-young and “Guinhoe“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무영은 「구인회」의 창립 동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구인회」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일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무영과 「구인회」의 관계에 대해서는 단편적 언급만 있을 뿐 본격적으로 연구 정리된 바가 없다. 이 글에서는 이무영과 「구인회」와의 관계 및 「구인회」 초기 이무영의 역할 등에 대해 정리했다. 아울러 그가구인회를 탈퇴한 시기와 이유에 대해서도 추정해 보았다. 1930년대 초반 이무영의 작품 세계는 이른바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문학동인 「구인회」의 성격과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오히려 프로문학 계열의 비평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무영이 「구인회」 가입 권유를 받은 이유는 그가 『문학타임스』의 편집 책임자였던 때문으로 보인다. 『문학타임스』는 「구인회」가 출범하던1933년 당시 국내의 유일한 문학전문 매체였다. 『문학타임스』는 『조선문학』으로 부활하면서 그 첫 호를 사실상 「구인회」 특집호로 편집 발행한다. 창립 당시의 「구인회」는 특정한 문학적 경향을 공유하거나 일정한 목표를 지향하는 모임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인의 문학적 정체성을 드러내게 되는 첫 동인지 발간 과정에서 결속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무영의 「구인회」 탈퇴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구인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작(多作)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문인들의 시선이 우호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구인회」가 이른바 순수문학이라는 특정한 문학적 성향을 지닌 동인들의 모임으로 규정될 수 있다면, 이는 출범 이후 적지 않은시간이 흐른 뒤부터 가능한 것이었다.
Abstract
Lee Moo-young is one of the founding drivers of “Guinhoe”. He contributed quite abit to publicizing the existence of “Guinhoe”. Nevertheless, there has been no research on therelationship between Lee Moo-young and “Guinhoe” until now. This article summarizes therelationship between Lee Moo-young and “Guinhoe” and the role of Lee Moo-young in theearly days of “Guinhoe”. In addition, we estimated the time and reason for his departure from the“Guinhoe”. In the early 1930s, Lee Moo-young’s world of work was quite far from the characterof “Guinhoe” a literary movement that represented so-called “pure literature.” His work activitieswere rather a target of interest from critics in the KAPF literature fi eld due to ‘social interest’. Th ereason Lee Moo-young received the invitation to join the “Guinhoe” was because he was theeditorial manager of the Literature Times. In 1933, when “Guinhoe” was launched, the LiteratureTimes was the only literary media in Korea. As Literature Times revives as Chosun Literature, the fi rstissue is actually edited and published as a special issue of “Guinhoe”. At the time of its founding,“Guinhoe” was not a group that shared a specifi c literary trend or aimed at a specifi c goal. Forthis reason, it seems that there was a conflict in the process of publishing the first magazinewhich revealed the literary identity of members. In this process, it is judged that Lee Mooyoung’s withdrawal from “Guinhoe” took place. Th e biggest characteristic of “Guinhoe” can besummarized in its prolifi c work. Th e views of some writers on this were not friendly. If “Guinhoe”could be defi ned as a group of people with a specifi c literary inclination, so-called pure literature,this was possible only after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had passed since its inception.
참고문헌 (27)
- 김인용(金仁鏞), "「구인회」(九人會) 월평(月評) 방청기(傍聽記)", 조선문학 (1933)
- 김팔봉(金八峰), "1933년도 단편 창작 76편", 신동아 (1933)
- 박승극, "조선문학의 재건설-상반기 창작 급(及)평론의 비판과 일반문학 문제에 관한 토구(討究)", 신동아 (1935)
- 박영희, "1934년 조선 문단의 동향", 신동아 (1934)
- 백철, "1933년도 신문소설계-연재소설과 신인작가 시대", 신동아 (1933)
- 안함광, "동반자작가 문제를 청산함", 조선문학 (1933)
- 이무영, "내게 감화를 준 인물과 그 작품-방황하엿을-", 동아일보, ~ (1932)
- 이무영, "이무영전집" (2000), 국학자료원
- 임화, "6월 중의 창작-이무영 작 「산장소화」", 조선일보, ~ (1933)
- S. K 生, "최근 조선문단의 동향", 신동아, ~ (1934)
- "「구인회」의 문예강좌", 조선일보, ~ (1935)
- "「구인회」 창립", 동아일보, ~
- "문단인 소식", 조선중앙일보, ~ (1933)
- "문단의 일 성사(盛事)! 「시와 소설의 밤」", 조선중앙일보, ~ (1934)
- "문예좌담회", 조선문단, ~ (1935)
- "편집전언(編輯前言)", 조선문학, ~ (1933)
- 김명숙, "구인회의 문화가치관과 심미적 취향", 한중인문학연구, (56), pp.51~74 (2017), 한중인문학회[DOI]
- 김민정, "의 존립양상과 미적 이데올로기의 상관성 연구", 박사, pp.2000
- 백철, "조선신문학사조사-현대편" (1949), 백양당
- 상허문학회, "근대문학과 구인회" (1996), 깊은샘
- 이경돈, "자료소개 - 전조선 범문단 문예지를 꿈꾼 『문학타임스』", 문자와 상상, (3) (2018), 아단문고
- 장영우, "'구인회’와 한국 현대소설", 현대소설연구, (54), pp.9~39 (2013), 한국현대소설학회
- 조연현, "한국현대문학사" (1961), 인간사
- 조윤정, "구인회와 문학권력", 구보학보, (16), pp.10~42 (2017), 구보학회[DOI]
- 최덕교, "한국잡지백년 제3권" (2005), 현암사
- 허병식, "한국근대문학해제집 제3권" (2017), 국립중앙도서관
- 현순영, "「구인회」의 안과 밖" (2017), 소명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