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탑에서 불상으로-중국 초기불상과 전통의 형성
From Stupa to Statues -The Invention of Tradition in Early Chinese Buddhis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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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남북조시대 사람들이 당시의 불상을 바라보던 시각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사원의 중심이 스투파였다. 문헌에 의하면붓다의 열반 후 스투파는 8기가 건립되었지만, 아쇼카 왕이 이 중의 7기를 해체하여 인도 전역에 8만4천기의 불탑을 세웠다고 하였다. 이것은 인도 전역의 거의 모든 불탑은 사실상 아쇼카 왕 시절에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에 사원을 건립하면서 불사리가 필요했지만, 역사적으로이를 입수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集神州 三寶感通錄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쇼카 왕이 8만4천탑을 세울 때 그 일부가 중국에 세워졌고, 그때의 사리가 발견되어 중국의 초기 불탑들에 봉안된 것이라는 설화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화만으로는더 많은 불사를 건립하는데 있어 한계에 부딪쳤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결책은 사리를 대체할 수 있는 물건으로도 탑을 세울 수 있다는 개념이었는데, 그러한 아이디어는 석가성도지인 보드가야의 중층누각형식의 마하보디 사당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하보디 사당은 사리가 아닌 석가성도상을 봉안한 건축물이었는데, 당시 보드가야를 방문한중국의 구법승들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특히 현장과 같은 승려는 장안 慈恩寺 大雁塔을 세울 때 이 마하보디 사당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탑 대신에 전혀 다른, 보다 쉬우면서도 직접적으로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불상이었다. 인도에서도 불상이 있었지만, 이는 주로 탑을 장엄하는 용도였으며 혹, 사리를 봉안한 불상이 불탑만큼 존숭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 안의 사리 때문이었지, 상 자체의 영험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이러한 불상들 역시 불사리처럼 진정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아쇼카 왕의 조탑 설화와 마찬가지로 아쇼카 왕 조상 설화가 중국에서만들어졌으며, 소위 아쇼카 왕상이라고 하는 것은 오래 전에 중국에 전래되어 묻혀 있다가 새롭게 발굴되어 남북조 시대 사람들 앞에 다시 현현한 것으로서 당시 사람들에게 믿어졌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들은 다양한 기적을 일으켰으며, 만약 똑같이 복제되는 경우, 원본과 같은 기적을일으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미지를 복제함으로서 영험함도 복제할 수있다는 이러한 경향은 보다 쉽게 불상의 진정성을 널리 유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남북조시대의 일부 불상들은 아쇼카 왕이 만든 상, 혹은 그 상을 복제한 상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이들 불상들은 당시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훨씬 오래 전에 제작된 불상, 혹은 오래된 양식으로서 당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 불상이 보이는 양식은 당시의 양식이 아니라, 당시보다 더 오래된 양식으로 보이기 위한 의도된 고식, 혹은 고법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의 양식을 倚古 양식으로 불러보고자 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우다야나 왕 조상설화도 전래되었는데, 이것은 우다야나 왕 시절에 도리천에 장인을 올려 보내 석가모니의 진용을 모사해와서 조성한 상이므로, 석가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조각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말하자면 석가의 초상으로서 사실주의를 어느 정도 바탕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본다면 불교미술에서 사실적 양식이라고 언급해 왔던 인도의 굽타 양식이나 이를 받아들인 북위시대 운강석굴 초기의 불상 양식들은 서양의 사실주의와 구분하여 眞容 양식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제시해 보았다. 결국 이러한 고찰을 통해 단순히 인형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불상들에사리를 대신한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쇼카 왕 설화와 같은 역사적전통을 만들어 내거나 우다야나 왕 설화와 같은 시각적 전통에 의지해야했던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Abstract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point of view to the buddha statues in the period of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in China. The stupa was a core of temple in India. According to the literary documents, the first stupa were 8 units. But the 7 of these were diffused to 84 thousand stupas at the King Asoka's reign. It means that most of all stupas in India contain the real Sakyamuni relics. But at the period of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in China, it was almost impossible to acquire the buddha's real relics for build a stupa. So this situation had mad a legend as written in Jí-shénzhōu-sānbăo-găntōng-lù (集神州三寶感通錄) that some stupas which had been built by Asoka belongs to Chinese territory, and it was believe that some peoples accidently dug out the real buddha's relics. But some legend as like this had met a critical situation to build a numerous stupas. The solution was to present a new idea that the stupa can be built by not only a real relics, but also by a alternative sacred one. This idea derive from Mahabodhī temple in Bodhgaya which resembles east asian pagoda's multi-stories wooden structure. This Mahabodhī temple did not contains a real relics but the image of enlightened buddha was enshrined in it. Many chinese pilgrims visited there and be inspired a new conception. It may lead to Dàyàntă(大雁塔) of Cíēnsì(慈恩寺) at Xian(西安) which might be designed by Xuánzàng (玄奘). In the mean time, Chinese buddhist invented a new conception which can substitute a relics. It was very different and easier item in comparison with relics. This was the Buddha statue. Even there was also a conception of buddha statues in India, it was worshipe by relics enshrined in the statues but not by the statue's miracle itself. But the chinese buddha statues need to get a authenticity as much as relics in stupa. So a variated legend of Asoka' stupa were invented as there were Asoka's buddha statues which already been introduced to china from a long time ago. These Asoka's statues worked a lot of miracles and even this divine nature can be reproduced by copying the original statues exactly same. It become a stronghold of rushing statues to worship. The most important point which this author would like to emphasis is that the buddha statues of early periods were accepted by peoples as statues which be produced at several hundred years ago in Asoka's reign or exquisite copies of very old style. This style can be named as "Antique(依古, yīgŭ) style". Another way to put on the authenticity to statues was derive from the legend of King Udhyana's invention of Buddha's image. This legend means that the King Udhyana's image had a authority as a real portrait of Sakyamuni. The style of most statues which were known to King Udhyana's belongs to indian Gupta style. So this style can be appreciate as a buddhistic realism. This might could be named as "Fidelity(眞容, zhēnróng)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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