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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齋 李恒의 학문적 위상 확립과정과 南皐書院

Growth of Academic Achievement of Iljae Yi Hang and Namgo Seowon (Confucian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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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일재 이항은 연산군 5년(1499)에 한양에서 태어나 나이 40세에 전라도 태인에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하며 호남의 ‘人師’로서 제자를 키웠다. 이항의 제자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는 등 창의에 앞장서서 의리를 실천하였다. 이항의 학문과 삶은 호남의 유생들에 의해 계승되었고, 이항은 ‘호남의 큰 스승[師表]’로 추숭되었다. 이항의 후손 이성익이 주도하여 『일재집』을 간행하는 과정에서 송시열, 박세채, 윤증 등 서인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항은 호남의 道學者로서의 평가를 굳히게 되었다. 이러한 서인들과의 관계는 경신환국(1680) 이후 이항을 배향한 ‘남고서원’이 사액서원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남고서원은 숙종 10년(1684)에 김창흡과 전라도 유생 등 京鄕의 서인들의 요청에 의해 사액되었는데,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이 격렬해지는 정국 하에서 서인의 주도하에 남고서원 사액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그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가 서인과의 관계 속에서 공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호남의 도학자와 사표로서 이항의 위상은 철종 7년(1856)에 정원용이 이항에게 시호를 내려달라고 요청하고, 고종 2년(1865)에 ‘文敬’이라는 시호가 내려온 이후 확고해졌다. 또한 고종 18년(1881)에 이항을 비롯하여 ‘호남오현’을 문묘에 배향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이항은 호남의 대표적인 도학자로 다시 거론되었다. ‘호남오현’의 문묘 배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결집한 호남 유생들은 남고서원의 중건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광무 3년(1899)에 이항의 후학과 호남의 유학들의 노력과 후원으로 남고서원이 중건사업이 시작되었고, 이때 이항의 제자 김점, 김복억, 김승적이 추향되었다. 사우를 중건하고 추향하는 일에 부안 김씨, 강진 김씨, 언양 김씨 문중과 이도복, 권순명, 김택술과 김형관 등 간재 전우의 직전, 재전 제자들이 참여하였다. 이항을 배향한 서원의 사액과 증시 등 公認되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만, 그의 실천적 삶을 본받고자 하였던 호남의 유림들은 그를 호남의 ‘寓公’이자 ‘師表’로 추숭하였던 것이다.

Abstract

Lee Hang(李恒), who was born in Han Yang in 1499, rusticated to Tae In, Jeolla-do at the age of 40. After then, he trained disciples concentrating to his study. When Japanese Invasion of Korea broke out in 1592, his disciples took part in the war by raising up forces or provided material support to the army. These were the way they kept fidelity which they had learned from him. After that, confucian scholars in Honam area tried to follow his will, and they accepted him as the teacher as well as moralist representing Honam area. He, however, wasn’t like that from the begining. At that time, he was comparable with Lee Hwang or Jo Sik, but different from them. He gradually established reputation taking the sponsorship and support of confucian scholars in Honam area. They tried to do something for him. For example, Namgo Seowon(南皐書院) where there was his mortuary tablet was authorized by the king of Chosun dynasty, and he also was granted a posthumous epithet(諡號), ‘Mun Kyoung(文敬)’. For these efforts, his status in Honam area was getting distinct. Especially, in 1881 it was claimed that ‘the five sages in Honam(湖南五賢)’ should be canonized into the National Academy, and then he acquired firm evaluation of a scholar representing Honam area. This evaluation was passed down until 19th century, and ‘Ganjae’s literary people’ kept going on with the effort to succeed his practical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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